[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3부)] 노사가 경영정보 공유… 다국적 기업으로 급성장
입력 2013-03-17 17:20
진공 관련 한 우물로 세계 최고 기술력 ‘파이퍼바큠’
진공 관련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 ‘파이퍼바큠(Pfeiffer Vacuum)’. 독일 가족기업으로 출발한 파이퍼바큠은 현재 세계 20개국에 지사를 두고 종업원만 2000명이 넘는 다국적기업이다. 경쟁기업을 인수한 2011년 5억200억 유로(약 200억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 대비 130% 신장했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회사지만 반도체뿐 아니라 가전, 코팅 등 진공기술이 필요한 산업체에서는 널리 알려진 곳이다. 삼성전자 등이 주요 고객으로 우리나라에도 지사가 있다.
독일 아슬라에 본사가 있는 이 회사에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사회, 즉 경영이사회 외에 감독이사회가 따로 있다. 6명으로 구성된 감독이사회에는 근로자 대표 2명이 포함돼 있다. 만프레드 벤더(사진) 대표이사도 감독이사회의 승인을 받아 2007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벤더 대표는 “경영진과 감독이사회는 철저히 분리돼 있으며 6명의 감독이사 중 4명은 주주가, 2명은 근로자들이 선출한다”고 말했다.
수시로 열리는 경영이사회와 달리 감독이사회는 분기에 한번 정도 열린다. 하지만 주주총회나 중요한 의사결정을 앞두고 예외 없이 감독이사들이 모인다.
벤더 대표는 “감독이사는 재정 등에 대한 감사를 벌이며 수시로 의견을 경영진에 제출한다”며 “투자 등 중요한 의사결정의 주체는 분명히 경영진이지만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소개했다.
이 회사는 창업자 가문의 가업승계가 불가능해진 뒤 1996년 주식회사로 바뀌어 증시에 상장됐다. 99년 회사의 대주주가 바뀌었지만 안정적인 노사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경영정보를 근로자와 경영진이 공유하면서 신뢰관계가 형성된 덕분이었다.
벤더 대표는 “90년대 말 상장과 대주주 변경 등 격동의 시기가 있었지만 해고 사태는 전혀 없었다”며 “고용유지를 위해 노사가 노력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또 “매년 30명 정도 직업교육생을 받아 회사 자체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고급인력으로 양성시킨다”며 “좋은 작업환경과 질 높은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좋은 직장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자부했다.
임금 등 근로조건은 산별노조의 협약에 따른 임금표를 적용, 동종 업계와 차이가 거의 없지만 교육시스템 등 작업환경이 좋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인기가 있다는 것이다.
본사 650명의 직원 중 95%가 정규직이고, 대부분 25년 이상 근속할 정도로 고용 안정성도 보장돼 있다.
노사가 힘을 합쳐 최근 프랑스 경쟁기업인 아딕센을 인수했고, 한국 등에도 공장을 세우면서 공격적인 경영에 나서고 있다. 대부분의 독일 히든챔피언과 마찬가지로 진공기술 한 업종에 특화하는 ‘한 우물만 파는’ 경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독보적인 기술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체 연구·개발(R&D) 투자도 아끼지 않고 있다.
벤더 대표는 “산학협력을 통한 기술개발도 하고 있지만 우리 회사만의 노하우가 새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대부분의 기술을 자체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슬라=한장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