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3부) 한국,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다] ③ 공존·공생하는 노사

입력 2013-03-17 17:27


‘노사공동결정제’ 경제민주화 핵심… 산업평화 주춧돌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산별노조 조직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노동쟁의는 매우 드문 나라로 꼽힌다. 독일의 경우 파업에 돌입하려면 산별노조 재적 조합원 75% 이상의 동의를 거쳐야 하는 만큼 파업 요건이 까다롭다. 또 산별노조가 파업 참가자에게 정상임금에 해당하는 대체임금을 줘야 하기 때문에 쟁의권을 쥐고 있는 산별노조위원장이 파업 돌입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파업에 돌입하더라도 비용을 최대한 줄이면서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을 쓴다.

1992년 2458개 사업장의 60만명 가까운 근로자가 파업에 참가할 정도로 적지 않았던 독일의 노동쟁의는 2011년 158개 사업장 1만1282명으로 줄어들었다.

상당수 노동 전문가들은 독일 특유의 ‘노사공동결정제(Mitbestimmung)’를 파업 감소의 이유로 꼽는다. 노사공동결정제가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근로자가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순기능을 하면서 독일의 산업 평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사회적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독일은 국가가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동시에 사회적 균형을 지향한다. 특히 노사공동결정제를 통해 근로자와 사용자 간 협력적 파트너 관계뿐 아니라 근로자의 경영 참여를 제도적으로 확립시켰다.

직업능력개발원 정원호 박사는 “개별 사업장에서 노조 역할을 하는 직장평의회(Betriebsrat)가 중대한 경영 결정에 대해 경영진과 협의를 한다”며 “대기업의 경우 노조 대표가 감독이사회에 참여하고 경영이사회 중 노무이사를 직접 임명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독일은 76년 종업원 2000명 이상의 대기업에 대해 설비투자 등의 경영전략 결정권이나 경영이사회 이사 결정권을 갖는 감독이사회 멤버의 반수를 근로자 대표가 맡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근로자의 경영 참여를 보장한 것이다. 다만 감독이사회의 의견이 가부동수인 경우는 주주 측에서 선임하는 의장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 경영자 측이 최종 결정을 하도록 했다.

다만 2000년대 중반에는 노사와 학계가 모여 노사공동결정제 개혁위원회를 만드는 등 노조의 경영참여 범위를 축소하는 쪽으로 제도를 개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특히 해외 자본을 유치하는 데 노사공동결정제가 제약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사공동결정제는 신속한 투자 결정을 방해하고 고용유연성을 떨어뜨리며 경영권이 침해받을 소지가 있다는 부정적 인식이 있었다”면서 “영·미 자본이 독일에 투자할 때 가장 꺼리는 게 바로 노사공동결정제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사공동결정제가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치기보다는 노사 갈등을 관리하는 기능을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개정 움직임은 백지화됐다. 사용자들 역시 노사공동결정제가 쟁의를 줄이고 노사 신뢰에 도움이 되는 순기능이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경영 투명성도 높아진다. 노조가 구체적인 경영정보를 공유하면서 경영진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커지고, 직접 경영에 참여하면서 회사에 대한 책임감을 키워준다는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노조 경영 참여를 통해 마련된 신뢰는 노사갈등이 극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준다”며 “비록 느리지만 노사가 공동으로 결정한 사항은 양측의 이해가 모두 일치한 것인 만큼 추진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노사공동결정제는 고용의 내적 유연성을 극대화하는 밑거름이 됐다.

정 박사는 “노사가 근로시간계좌제(연장·휴일·야간근로를 했을 때 수당을 받는 대신 그 시간을 적립해뒀다가 나중에 휴가를 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등을 도입해 위기상황을 대비하는 등 고용의 내적 유연성은 최고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역시 불황 때 근로시간 단축제를 도입해 해고를 하지 않는 기업에 임금을 보전해주는 등 고용유지를 적극 지원함으로써 노사 화합에 기여한다.

지역에 기반을 둔 가족기업들의 온정주의적 노사관계도 독일에 노동쟁의가 적은 이유 중 하나다. 가족기업이 대분인 중소기업은 근로자, 협력기업, 지역사회 등과 높은 신뢰를 바탕으로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지역사회에 대한 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 또 중소기업들은 근로자들과 암묵적 종신계약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종업원을 해고하는 사례가 적고, 해고하더라도 불가피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실시한다.

박재영 주독일 대사관 상무관은 “독일 노사는 ‘나라는 생각(Ich-Denken)보다 우리라는 느낌(Wir-Gefuehl)’이 강하다”며 “이 같은 온정주의적 노사관계로 인해 독일 근로자들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높고 이직률은 낮다”고 전했다.

귀터슬로=글·사진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