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피해자, 가해자 될 위험 더 높다… 모범생이 왕따 당하자 스스로 비행학생으로
입력 2013-03-15 18:29
김모(16)군은 3년 전 학교폭력에 시달린 이후 인생이 바뀌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중학교에 입학한 김군은 늘 학교 선생님들의 관심 대상이었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반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들은 점점 더 교묘하게 김군을 괴롭혔고 ‘시험지에 답을 쓰지 말아라’, ‘선생님에게 반항하라’는 식의 요구까지 했다. 결국 김군은 친구들의 요구에 못 이겨 스스로 ‘비행청소년’이 됐다. 김군은 “피해당하지 않기 위해 가해 학생들과 어울려 다른 친구들의 돈을 뺏기도 하고 내가 당했던 것처럼 괴롭혔다”고 말했다. 자신과 같은 아픔을 다른 친구에게도 주고 있다는 죄책감에 김군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김군처럼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학생은 범죄행위를 할 위험이 일반 학생들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조윤오 교수가 최근 공개한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범죄행동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학생들의 범죄행위 공격성 점수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청소년 쉼터에 있는 가출 청소년 85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다.
조사 결과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한 214명의 경우 다른 사람의 물건을 자주 훔치거나 돈을 강제로 빼앗는 등의 ‘타인에 대한 공격행위’ 항목 평균이 4.58점으로 그렇지 않은 학생(3.52점)에 비해 높았다. 가스·본드를 흡입하거나 자살 시도를 했는지를 묻는 자기공격 문항 역시 평균 4.58점으로 그렇지 않은 학생(3.41점)보다 높았다. 5점에 가까울수록 공격성이 높은 범죄행위를 뜻한다.
조 교수는 “학교폭력 피해자가 사후에 또 다른 범죄를 일으키는 이유는 피해자가 자신도 모르게 가해자·피해자 관계를 통해 폭력과 통제를 학습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치 않는 폭력피해 경험이었지만 그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폭력을 가해야 하는지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전문화된 상담과 치료를 통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