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해적판’ 유통 실태] ‘수트’ 끝난 지 한시간… 400여곳서 “불법 다운 OK”

입력 2013-03-15 17:06


美 드라마 도둑맞던 날

지난 1월 3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NBC Universal의 사무실. 간판도 없는 사무실에서 이 회사 소속 저작권 단속 보안요원 3명이 여섯 대의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 저녁 10시(동부시간) USA네트워크에서 방영되는 법정드라마 ‘수트(Suits)’가 끝나자마자 불법 파일이 인터넷에 업로드되는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던 것.

미동부에서 드라마가 끝난 오후 11시가 조금 넘어 하나둘씩 생겨나던 불법파일 공유 사이트는 자정을 지나자 444개로 늘었다. 두 시간이 지난 새벽 1시, 시차로 서부에서 드라마가 막 방영되기 시작했지만 이미 불법 공유 사이트 숫자는 951개로 두 배가 넘게 늘었다.

불법 다운로드가 계속되는 동안 저작권 단속 요원은 웹사이트 운영자에게 파일 공유는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공지를 보내고 파일 공유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런 공지를 보내는 동안에도 파일 공유는 계속됐고 숫자는 삽시간에 늘었다.

미 서부에서 드라마가 끝나자 파일 공유 사이트는 이미 1380개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다음 날 점심때에는 파일 공유 사이트가 5424개가 되면서 걷잡을 수 없었다. 불가리아를 비롯해 체코, 중국 등 7개국 버전으로 된 자막까지 등장하면서 전 세계 수백만 시청자가 무료로 볼 수 있었다.

NBC Universal의 콘텐츠 보안 담당책임자인 앤드류 스키너는 “불법파일 공유 단속은 마치 인해전술을 구사하는 적과 싸우는 것 같다”며 “하나를 없애면 그 다음에는 50개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5일 초고속인터넷과 첨단기술을 보유한 저작권 침해범들이 드라마나 쇼, 올림픽과 같은 대형 스포츠이벤트 콘텐츠를 순식간에 전 세계에 공유하는 실태와 함께 콘텐츠 제작사가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하지만 속수무책으로 저작권을 침해당하는 현실을 심층리포트로 보도했다.

신문은 최근 저작권 침해 경향이 더욱 과감하면서도 각종 기술을 겸비해 단속이 더 힘들다는 게 특징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저작권 단속업체인 어데토(Irdeto)는 2009년 인터넷에서 드라마나 쇼, 게임물과 같은 저작물에 대한 권리 침해가 54억건이었던 데 비해 지난해에는 무려 140억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미디어 산업도 음악처럼 된다?

저작권 침해는 곧바로 콘텐츠 제작사의 위기로 연결된다. 특히 유료채널인 USA나 타임워너, HBO 같은 유명 케이블채널은 시청자가 줄어들면서 이익도 감소하고 있다. 여기에 비디오 대여나 판매, 다른 TV네트워크에 저작물 판매에도 영향을 받고 있다.

지난해 1100만명 이상이 시청한 것으로 알려진 HBO의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 시즌2를 살펴보자. 파일 공유 전문 블로그인 토런트프릭닷컴(TorrentFreak.com)에 따르면 시즌1에서 파일 공유를 통해 370만명이 불법으로 시청한 것으로 알려진 이 드라마는 시즌2에는 불법시청자 수가 420만명으로 38%나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HBO 대변인은 “회사는 광범위한 저작권침해 방지를 위한 프로그램이 있지만 부분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 침해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영화배급업자인 케이시 울프는 지난해 건당 3.99달러를 받고 영화를 다운로드 방식으로 배급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발견한 것은 최소 90만3000개의 불법파일 공유 사이트였다. 이 때문에 그녀는 무려 300만 달러의 손해를 본 것으로 추정했다.

손해는 이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1년 수입 절반에 해당하는 3만 달러를 써서 불법 다운로드를 경고하는 통지비용에 썼다. 여기에 경기침체와 저작권 침해로 인한 손해 등으로 자기 자신의 월급은 고사하고 11명의 직원을 감축하고 마케팅 비용도 절반으로 줄여야 했다. 그녀는 “저작권 침해 현상은 정말 심각하다”며 “우리 모두를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NBC Universal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해외에서의 저작권 침해가 심각하다. NBC Universal의 스페인어판 부문은 최근 해체됐다. 2009∼2011년 사이 판권수입이 62%나 감소했기 때문이다. 저작권침해 단속 부문장인 에릭 코튼은 “저작권 침해는 특히 해외가 더 문제”라고 말했다.

일부 미디어 전문가들은 결국 미디어 산업도 음악 산업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불법 다운로드가 일상화되면서 음악 산업은 1999년 290억 달러였던 판매액이 수직으로 떨어져 최근에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초고속 인터넷 발달이 미디어 산업 죽인다?

저작권 침해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은 인터넷의 발달과 관계가 있다. 특히 초고속 인터넷이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크기가 큰 파일을 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스포츠중계까지 인터넷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뉴욕대 로스쿨의 저자권법 전문가인 제임스 그림멜만은 “초고속 인터넷의 광범위한 보급이 저작권 침해를 더욱 부채질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파일 공유 기술인 비트 토런트는 파일을 인터넷상에 여러 곳에 분산해 저장한 뒤 다수의 접속자가 여러 곳에서 동시에 파일을 공유해 조립하는 방식으로 단속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전송 속도도 엄청나게 빠르다.

미국영화협회(MPAA)는 저작권 침해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이 일자리 감소와 세금 감소 등을 합쳐 해마다 580억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미 의회 회계감사원(GAO)은 2010년 보고서에서 저작권 침해가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의회에서는 인터넷저작권침해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많은 기업은 이 법안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것이라며 반대의사를 밝혀 법안으로 성립되지 못하고 지난해 1월 폐기됐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기업이 직접 저작권 보호를 위해 나서고 있다. NBC Universal의 경우 2011년부터 저작권 단속인력을 20명까지 두 배로 늘렸다. 이 중에는 변호사나 인터넷전문 보안기술자, 괴짜 컴퓨터 전문가 등도 포함됐다. 또 단속팀을 24시간 운영하면서 불법 공유 사이트를 찾아내고 사법당국과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일부는 법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NBC Universal은 다른 4개의 콘텐츠 제작사, MPAA 등과 함께 파일 공유 사이트인 핫파일(Hotfile)이 저작권을 대규모로 침해하고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선고는 올봄으로 예정돼 있다.

문제는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작권 침해가 쉽게 단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법파일 공유 사이트는 ‘잽싸게’ 파일을 올리고 사라지거나 서버 주소를 추적해보면 네덜란드나 중국, 러시아 등 해외에 있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회사 측은 단속과는 별개로 콘텐츠 인식기술을 자사의 프로그램에 적용해 유튜브 등에 업로드가 불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저작권 침해 단속 부문장인 릭 코튼은 “저작권 침해가 단기간에 사라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우리의 미래가 디지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