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바꾸려면 힐링 아닌 킬링이 필요”… ‘피로사회’ 저자 한병철 교수 새 책 ‘시간의 향기’ 출간

입력 2013-03-14 21:14

지난해 3월 출간된 ‘피로사회’(문학과지성사)는 속도의 족쇄가 된 우리 사회를 담아내는 키워드로 회자되며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6만부 이상이 팔렸다. 이 책의 저자 독일 베를린예술대학 한병철 교수가 신간 ‘시간의 향기’(문학과지성사) 출간에 맞춰 방한, 14일 서울 광화문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한 교수는 “사회를 바꾸려면 언어의 폭력, 즉 분노의 언어가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는 달콤함만 가득한 힐링 책으로 넘쳐난다”며 “힐링이 아니라 있는 걸 분쇄하는 킬링을 해야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간 ‘시간의 향기’도 지금 있는 걸 분쇄하고 다른 시간을 창조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요약했다.

한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판치면서 세상에는 노동의 시간과 소비의 시간만 존재하게 됐다”며 “시간이 소비와 노동을 떠나야 시간에 향기가 생겨난다”고 했다. 가속화의 반대로 슬로우가 회자되는 것에 대해서도 “병이 있는데 천천히 간다고 치유가 되겠냐. 시간의 위기는 남에게 내 시간을 줘야 해결이 된다”고 했다. 아울러 “사색하는 시간도 다른 시간을 만들어 내므로 성공 조급증을 멈추고 사색하는 능력을 장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람직한 모델로 새 교황으로 뽑힌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을 들었다. 한 교수는 “그는 ‘나는 가난과 결혼했다’고 했다. 그가 택한 교황 이름인 성 프란치스코도 가난의 상징”이라며 “가난을 풍족하게 여기는 문화라야 다른 시간이 생겨난다”고 했다.

국내 보수·진보학자들이 사회와 정치에 대해 언급하는 지적 풍토의 얄팍함도 도마에 올렸다. 그는 “사회현상을 분석해야 한다. 그런 자기 분석 수단이 없으면 문제의 형상이 드러나지 않는다”며 “그렇지 않고 이것저것 얘기하는 건 간섭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