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식 통일부 차관 퇴임… 남북 물밑협상의 주역 ‘미스터 K’ 5년마다 바뀌는 통일정책에 쓴소리

입력 2013-03-14 21:12

‘미스터 K’가 ‘소극(笑劇·관객을 웃기기 위해 만든 비속한 연극)’ 무대에서 퇴장했다. 김천식 통일부 차관은 14일 이임사에서 “분단질서가 녹슬어 푸석거리고 있다. 현실 속에서 시퍼렇던 분단대결은 이제 무대 위에 올려진 소극이 됐고 지금은 막장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표하며 28년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행시 27회로 공직에 들어온 김 전 차관은 2000년 이후 남북관계의 산 증인이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때 통일부 과장으로서 파격적으로 회담에 배석, 기록을 담당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북정책 실무 책임을 맡았고, 지난 정부에서도 중용됐다. 북한과의 물밑협상설이 제기될 때마다 ‘K국장’으로 언론에 거론되면서 미스터 K란 별명을 얻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 시절 2009년 11월 개성에서 북한 원동연 통일전선부 부부장과 접촉하고, 2011년 5월 베이징 비밀 접촉의 남한 당사자가 김 전 차관이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북한 폭로 이후 이를 시인한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과 달리 김 전 차관은 사석에서도 그 얘기가 나오면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는 이임사에서 “남들이 해보지 못하는 특이한 일들도 해보았다”고 회상했다.

이명박 정부 4년차에 ‘회담통’인 그가 차관에 임명되면서 남북관계 정상화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장기를 되살리기에는 때가 맞지 않았다. 김 전 차관은 “소년시절부터 제대로 된 나라, 부강한 조국의 답이 통일에 있다고 믿었다”며 “지금까지도 계속해 온 이 꿈은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5년마다 바뀌는 통일정책에 대한 일침도 가했다. 그는 “정권이 바뀌고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가지 다른 평가가 있다”며 “통일 문제라는 의미의 수준에 맞는 비평도 없는 것은 아니나 때로는 엉뚱하기도 하고 파와 당의 잣대로 사리에 맞지 않게 국익을 재단하는 경우까지 있다. 이것에 동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퇴임 후 사적 이익을 위해 국가로부터 받았던 녹봉이 유용되지 않도록 하고, 고위 관료 출신으로서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일하는 과정에서 만난 북한의 동료들 모두 안녕하라”고 전했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