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링 태극전사들이 해병대에 간 까닭은?

입력 2013-03-14 21:11


지상 11m 높이의 아찔한 헬기 레펠 타워에 오른 레슬러들. 올림픽 퇴출 위기에 몰린 현실을 말해 주는 듯했다. 그들은 ‘레슬링 생존’의 꿈을 안고 주저 없이 뛰어내렸다. “나는 불굴의 의지와 필승의 신념으로 대한민국 레슬링을 지킨다.” 그들은 절규했다. 이대로 희망의 끈을 놓을 순 없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하계올림픽 핵심종목(Core Sports) 제외 소식으로 충격을 받은 대한민국 레슬링 대표선수들이 해병으로 변신해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았다.

14일 오전 충남 태안군 안면도의 해병대 리더십교육센터. 한국 레슬링 대표팀 지도자들과 선수들은 입소식을 마친 뒤 강도 높은 지옥훈련에 돌입했다. 선수단은 입소하자마자 위장복으로 갈아입고 결연한 표정으로 ‘올림픽 퇴출 결사반대’라고 새겨진 띠를 머리에 둘렀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0㎏급 금메달리스트 정지현(30·삼성생명)은 “인류의 자산인 레슬링이 올림픽에서 사라져선 절대 안 된다”며 “대한민국 레슬링 선수단은 IOC의 퇴출 결정을 결사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수단은 입소 첫날 유격훈련을 하며 한 덩어리가 돼 땅 위를 이리저리 뒹굴었다. 온몸은 금세 흙투성이가 돼버렸다.

“하나! 둘!” 선수들의 구령소리는 점차 악에 받친 비명소리로 변해갔다. “악으로 깡으로! 우리는 할 수 있다!” 태극전사들은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눈빛만큼은 살아 있었다.

헬기 레펠 훈련은 전초전에 불과하다. 선수단 50여명은 2박3일 동안 진행되는 이번 훈련에서 차디찬 갯벌 위로 몸을 던지며 고무보트(IBS) 들고 달리기, 6㎞ 해안 행군, PT훈련 등을 받아야 한다. 코칭스태프도 예외는 없다.

“레슬링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지만 미국 러시아 이란 등 레슬링 강국들을 중심으로 각국 협회가 힘을 모으고 있는 만큼 올림픽에서 살아남을 것이란 희망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김기정 대한레슬링협회 전무이사의 말이다.

2020년 올림픽에서 치러질 마지막 한 개 종목을 결정하는 절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레슬링을 포함해 8종목이 한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가운데 5월 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차기 IOC 집행위원회에서 후보군을 3∼4개 종목으로 좁히는 작업을 한다. 국제레슬링연맹(FILA)은 일단 후보군에 포함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잡았다. 퇴출 종목은 9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총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한국 레슬링은 그동안 올림픽에서 금메달 11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13개를 획득하며 ‘효자 종목’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태안=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