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이영미] 서울시를 위한 변명

입력 2013-03-14 20:41 수정 2013-03-14 22:43


콩나물, 두부, 계란, 양파, 상추, 갈치, 북어, 소주, 막걸리….

한국인용 생존 매뉴얼이 있다면 절대 빠지지 않을 생필품들이 핫이슈로 떠올랐다. 지난주 서울시는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에서 팔 수 없도록 조정 가능한 물건 51가지를 선정해 발표했다. 곧 반대의 봇물이 터졌다. ‘세계사에 유래 없는 규제’ ‘자유시장 붕괴정책’ 같은 반응은 점잖은 축에 속한다. 한편에서는 ‘서울이 평양인가’ ‘좌빨도 반대하는 공산주의’ ‘장터시대로 돌아가자는 정책’ 등 원색적인 비판과 조롱이 난무했다. 대형마트의 반발이야 짐작 가능할 터이고.

어느 경제학자의 분노 섞인 논평처럼 서울시가 “시민을 이렇게 괴롭힐 수 있는지” 상상도 못할 일을 벌인 게 소비자를 골탕 먹이자는 악의 때문은 아닐 거다. 지난 1999∼2010년 재래시장 매출이 46조원에서 22조원으로 쪼그라든 사이, 대형마트 매출은 7조원에서 36조원으로 5배 이상 팽창했다.

대도시 맞벌이 부부들은 주말 오후 인근 이마트나 롯데마트, 홈플러스로 몰려가 속옷, 양말, 티셔츠부터 프라이팬, 욕실깔개, 치약, 세제, 두부, 달걀, 우유, 삼겹살, 생수, 스킨로션까지 한 주간 필요한 물건들을 카트에 쌓는다. 엄마가 옷을 고를 동안 아빠는 프랜차이즈 미용실에서 이발을 하고, 아이가 놀이방에서 노는 사이 엄마는 프랜차이즈 피부미용실에서 마사지를 받는다. 그렇게 대형마트라는 초대형 진공청소기가 손님을 빨아들이는 사이 동네의 속옷가게, 야채가게, 빵집, 쌀집, 떡집, 잡화점, 화장품가게, 완구점, 문구점, 철물점, 잡화점들은 차례로 문을 닫았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현대의 소비공간 속에서 우리는 마냥 행복해졌다. 과연? 한 달에 한두 번 쇼핑카트에 산처럼 찬거리를 쌓으며 쇼핑을 할 때마다 고민에 빠지곤 한다. ‘오늘 안 사면 달걀이 떨어질까? 냉장고 속 두부 한 모로 다음 주까지 충분할까?’ 그렇게 사다놓은 달걀과 두부는 종종 유통기한을 넘겼고, 호박과 상추는 말라비틀어지곤 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대체 언제부터 그곳에 ‘거주’했는지 의심스러운, 집 앞 슈퍼의 두부가 떠올랐다. 손님이 적고 물건 회전이 느린 동네 슈퍼의 품질은 갈수록 떨어졌고, 찾는 이는 더욱 드물어졌다. 비상식량 쌓아놓듯, 주말에 찬거리를 구비하지 않으면 곤란한 일이 생겼다.

한두 해 전 전자제품 대리점에 갔다가 난처했던 기억이 난다. 작고 싼 TV가 필요했던 터라,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과 브라운관(CRT) TV를 언급했다가 외계인 취급을 당했다. 3D 기능이 장착된 고가의 발광다이오드(LED) TV들 앞에서 브라운관이라니. 그때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양분한 국내 전자업계 생태계에 처음 화가 났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자금력 좋은 대기업은 첨단을 추구해야 한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LED TV가 필요 없는 소비자를 위해 적정기술의 제품을 생산하고 유통할 시장 역시 존재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게 쇼핑의 자유가 아닌가.

작은 걸 지키자는 게 꼭 약자보호의 명분 때문만은 아니다. 소비자에게는 그게 선택의 자유이기도 하다. 만약 서울시의 정책이 실현된다면, 대형마트에 가서 콩나물을 살 자유는 침해받는다. 하지만 대형마트에 ‘갈’ 자유만이 아니라 ‘가지 않을’ 자유 역시 소중하다. 신선한 찬거리를 걸어서 쇼핑할 자유. 해 좋은 날 동네가게에서 딸기 한 상자와 두부 한 모를 고를 자유. 그걸 빼앗긴 거라면 이참에 되찾으면 좋겠다.

이영미 정책기획부 차장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