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출신 첫 교황 선출] 프란치스코는 누구
입력 2013-03-14 18:57 수정 2013-03-14 22:22
‘그는 2001년 아르헨티나의 최고 성직자가 된 후에도 화려하게 장식된 교회 관저에서 잠을 자지 않았다. 시내에 있는 작은 아파트와 단출한 침대를 좋아했다. 쌀쌀한 날에 아파트 중앙난방이 차단될 때도 난로로 버티면서 말이다. 그는 매일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7시부터 일했으며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했다. 음식은 스스로 요리해서 먹는데 남미의 전통차 마테를 즐겼다. 그는 세상 이목을 좋아하지 않는다.’
13일(현지시간) 266대 교황에 선출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아르헨티나 추기경의 전기 ‘예수회’를 기록한 저자 세르지오 루빈은 그를 이렇게 설명한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하며, 사교적 삶을 즐기지는 않으나 탱고와 축구를 좋아한다. 특히 산 로렌조 데 알마그로 팀을 응원한다.
프란치스코는 교황으로 뽑히고 나서도 특별 차량을 마다하고 추기경들과 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교황은 이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건배를 제안할 때 “신이 당신들을 용서하길”이라고 말해 웃음이 터졌다. 자신을 교황으로 선출한 추기경들에게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는 농담이었다. 교황이 소탈한 매력으로 참석자들의 마음을 얻었다고 뉴욕의 티머시 돌런 추기경이 전했다.
프란치스코는 22세가 되던 해 예수회에 입문해 수도사의 길을 걸었다. 산미겔 산호세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독일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하다.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에 올랐으며 2001년 추기경에 임명됐다. 10대 때 감염 문제로 폐 한쪽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는다.
그는 교리에서는 보수적이지만 사회적 이슈에서는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BBC는 새 교황이 낙태, 동성결혼, 피임을 반대하는 등 가톨릭교회의 변화를 바라는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 있다고 전했다.
“그가 개혁적입니까. 자유주의 신학자입니까. 대답은 ‘노’입니다. 그가 빈부격차를 확산한 신자유주의와 국제통화기금(IMF)을 비판했습니까. 빈민층을 위해 수많은 시간을 썼습니까. 거기에 대한 대답은 ‘예스’입니다.” 프란치스코의 전기를 집필한 루빈의 평가다.
프란치스코는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치하에서 예수회를 이끌며 “비(非)정치화를 견지하라”는 지침을 내렸으며 남미 좌파 성향의 해방신학과도 거리를 둬왔다. 1970년대 인권을 유린한 ‘더러운 전쟁(Dirty War)’ 당시 이를 주도한 아르헨티나 군사정권과의 관계는 지금도 논란거리로 남는다. 자유주의 성향의 예수회 사제 2명이 납치·투옥될 당시 그가 침묵했다는 의혹이다.
박유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