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참전용사 찰스 랭글 美 하원의원 “잊혀진 전쟁 안되게…한국전 영웅 희생 기념해야”
입력 2013-03-14 17:43 수정 2013-03-15 00:44
찰스 랭글(83) 미 하원의원은 한국전 경험을 들려 달라는 부탁을 처음엔 완곡히 사양했다. 6·25전쟁 참전용사인 ‘노병’에게 6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 전쟁은 여전히 참혹해서 상기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전쟁의 교훈을 미래 세대에게 교육해야 하며, 잊혀진 전쟁이 돼서는 안 된다’는 부분에서는 목소리의 톤이 높아졌다. 많은 미군 동료들이 희생된 한국이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이자 경제 강국으로 발전했다고 언급할 때는 큰 자부심이 느껴졌다. 인터뷰는 미 하원 레이번 빌딩의 랭글 의원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올해는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전 참전군인으로 특별한 감회가 있을 듯하다.
“전장에서 싸운 군인들을 기억하는 것은 항상 중요하다. 이는 한국전 참전군인들에게 특히 중요하다. 미국에서 한국전은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에 끼여 자주 망각되곤 하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전 참전군인들은 한국에서 귀국할 때 2차 세계대전 전쟁 영웅들이 받았던 주목과 박수갈채를 받지 못했다. 미국인들은 한국전 영웅들의 희생을 천천히 잊어가고 있다. 많은 한국전 참전군인들이 80대 노령이어서 70주년 정전 기념식에는 참석하지 못할 것이다. 정전 60주년은 이러한 정당한 대우를 영웅들에게 베풀 시간이 끝나가고 있음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의원님은 현재의 한국전 정전협정을 공식적인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왜 그렇게 해야 하나.
“공식적인 평화협정을 맺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협정을 통해서만이 이 길고도 엄청난 희생이 난 전쟁이 종식되기 때문이다. 전쟁의 포성이 멎었지만 60년간이나 남북한 양국은 기술적으로 전쟁 상태로 남아 있다. 종식되지 않은 적대행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한반도 주민들은 강력하고 통일된 ‘코리아’를 원한다. 남북 대치상태가 종식되면 양국은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고, 북한 주민들에게 정상적인 물자 공급도 이뤄질 것이다. 북한 지도자들이 수사(rhetoric)의 수위를 낮추고 핵무기 개발 계획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잇따른 추가 도발 위협으로 한반도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행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이 문제에 관련된 모든 당사자들이 한걸음 물러서서 냉정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군사력이 집중된 지역 중 하나다. 모든 관련자들이 직접 대응하려는 충동을 억제하는 게 필수적이다. 작은 군사 충돌도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북한의 정전협정 폐기 위협을 우리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북한은 도발적이고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을 지난 수십 년간 입증돼 왔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야심을 종식시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외교적 대안도 열어놔야 한다.”
-미국 정부와 참전군인 단체들은 오는 7월 27일 한국전 정전 60주년 기념식을 대대적으로 거행하려 하고 있다. 의원님은 얼마나 관여하고 있고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지난 의회 회기에 나는 존 코니어스, 하워드 코블, 샘 존슨 등 다른 한국전 참전용사 출신 의원들과 함께 2012∼2013년을 ‘한국전 참전군인의 해’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국방부 산하 한국전 정전60주년기념위원회와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이뤄진 것이다. 이 결의안에 따라 60주년 기념위원회는 한국전 참전군인들을 기리는 전국적인 캠페인을 벌일 수 있게 됐다. 위원회 설립 목적은 실종자로 분류돼 있는 참전용사들의 유해 발굴과 정보 습득을 계속하고, 한국전 기념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치며, 올해 60주년 정전 기념식을 한국과 공동으로 성대히 거행하는 것이다.”
-미래 세대가 한국전의 교훈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 정부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전쟁에 휘말리면 군인은 물론 민간인도 파괴적인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전쟁은 인간의 삶을 파괴할 뿐 아니라 공동체와 나라의 발전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 참혹한 전쟁에서 싸우고 전사했던 모든 이들을 기억하고 정당한 명예를 누리게 하는 것은 한층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낮게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시정하기 위해 여러 법안과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데 앞장서 왔다. 앞으로도 한국전 영웅들의 희생을 기념하는 데 의회의 동료들과 힘을 합쳐 노력할 것이다.”
-한국에 많은 친구와 지인들이 있고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 또 한국재향군인회로부터 감사휘장과 감사패를 받았다. 당시에 어떤 느낌이었나.
“한국전 참전군인으로서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항상 영광스럽다. 한국전 당시 피폐했던 국토와 한국인들의 상황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2011년 4월 게리 로크 당시 상무장관 등과 통상 분야 미국 대표단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해 그 역동성을 목격했을 때의 자부심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서울의 고층건물과 번성하는 경제, 아파트숲은 한국인들의 결의와 능력의 징표다. 내 가슴에 항상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인들과 한국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한국전 당시 미국인들의 희생과 인명피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돼 있고 최근 긴장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미국인들이 희생할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하나.
“당연히 그렇다. 한국전 참전 미군들은 한반도를 덮친 공산주의 파도를 막아냈다. 대한민국이 오늘같이 발전되고 성숙한 민주국가가 된 데는 이들의 기여가 큰 몫을 했다. 정전 60주년을 맞아 미 의원으로서 미국과 한국의 혈맹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할 수 있어 기쁘다. 한국은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의 하나로 베트남전과 걸프전, 이라크전 등에 군대를 보내 미국을 지원해 왔다. 특히 이 자리를 빌려 최근 취임한 박근혜 신임 대통령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싶다. 여성이 대통령이 됐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의 가장 빛나는 모범이 됐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다.”
-한국전 당시 경험을 들려 달라.
(랭글 의원은 당초 인터뷰에서 “오랜 시간이 흘렀고, 너무 참혹한 이야기라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며 사양했다. 이후 이메일로 답변을 줬다).
1948년 미군에 입대해 1952년 제대했다. 한국전쟁에서는 미 2사단의 흑인으로만 구성된 503야전포병대대에 배속돼 싸웠다. 미군이 부산, 낙동강, 38선, 평양 그리고 압록강까지 진격하자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때 중공군이 개입했다. 1950년 11월 말 미 2사단은 중공군에 점차 포위됐고 강력한 공격을 받았다. 사흘 밤낮을 나팔을 불어대며 중공군은 우리를 밀어붙였다.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 폭탄 파편에 등 부위를 다쳤고, 그 충격으로 진창에 빠졌다. 동료 시신 사이에서 죽은 체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살려주신다면 어떤 잘못도 하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그리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날이 내 인생에서 최악의 날이었고 이후는 좋은 날이었다.
찰스 랭글은
미 뉴욕시 할렘에 지역구를 둔 연방 하원의원으로 22선(選)이다. 민주당 소속으로 1971년 이후 의원직을 이어가고 있다. 의회 내 흑인 의원들의 모임인 블랙 코커스 창립 멤버로 흑인 의원들에게 큰 영향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 역할을 하기도 했다. 미 의회 내 지한파 대부로 불리며 2009년 ‘한국전 참전용사 인정법안’ ‘한국전 납북자 송환 결의안’ 등 각종 한국전 관련 법안과 결의안의 의회 통과를 주도했다. 할렘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1950년 한국전에 참전했다. 자신이 부상한 상태에서도 동료 3명을 구해 동성무공훈장 등을 받았다. 2007년 이후 4년간 하원 상임위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는 세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만난 사람=배병우 워싱턴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