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시 공모 심사평 “한편 한편, 놀라운 시적 이미지로 신앙의 본질에 접근”
입력 2013-03-14 17:35
자연의 사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작품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다. 이 사물들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순수감각으로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만진 느낌을 언어로 형상화한 것이 시적 이미지이다. 현대시를 사물시(事物詩)라고 하는 것은, 현대시의 창작이 곧 사물의 속성을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물의 속성(屬性)이 곧 하나님의 뜻이며, 창조원리이며, 우주정신이다. 이처럼 사물과의 교감(交感)이 이루어지는 것을 ‘신과의 대화’라고 한다. 나를 비워 빈 그릇과 같이 될 때 성령이 오시어 내 순수감각과 교감하는 것을 방언이라고 한다. 시적 이미지는 곧 그 시인의 방언이며,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대상(大賞) 작품을 결정하기 위해 두 분의 심사위원이 숙의한 끝에, 제인자의 ‘달팽이’를 선정했다. 나의 생각과도 일치하여 이의 없이 결정되었다. ‘달팽이’는 딱딱한 집을 지고, 푸성귀 잎을 먹고 사는 무른 몸의 생물이다. 그가 “수돗물 세례 받고 빗장을 지르면 / 안으로 걸어 닫은 캄캄한 한 채의 집이지요”에서 보듯, 달팽이의 생태적 속성을 그냥 제시했지만, 이 두 행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다. 이런 것이 바로 이미지의 형상화이다. 형상화된 이미지는 비유와 상징의 보고이다. 시인은 달팽이와 나의 생태적 속성을 이미지로 형상화함으로써 신앙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다. 이 작품의 키워드는 ‘무른 몸, 딱딱한 집, 채식’이다.
다음으로 김승철의 ‘은총’을 최우수로 선정해 내놓았다. 나도 동의했다. 김승철은 ‘은총’이란 기독교적 관념어를 제목으로, “새가 못이 되어 날아와 박힌다 / 외마디 신음만 들릴 뿐, 추락하는 그림자 사이로 / 달이 새파랗게 질려 보고만 있다”에서 보듯, 어떤 극적 상황의 분위기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제시한다. ‘은총’이란 관념을 순수감각으로 느낄 수 있게 하려면 이런 상황적 이미지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시인의 뛰어난 상상력이 ‘은총’이란 영적 현상을 느낄 수 있는 상황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 작품의 키워드는 ‘새, 못, 나무’이다.
그리고 정미경의 ‘그렇다면, 나사들은’과 유지호의 ‘해질무렵에’를 우수로 선정했다. 정미경은 “낡은 옷장 하나 / 아파트 공터 한쪽에 웅크리고 있다”로 시작하여, 낡은 옷장의 해체과정을 이미지로 형상화해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쓰던 가구에서 나무라는 본질로 돌아가는 옷장의 빈 곳에 “차곡차곡 수납되는 먼지들의 나이테 / 문득 날아든 풀씨 하나 싹을 틔우고”에서 보듯, 많은 비유와 상징을 안고 있는 이미지가 놀랍다.
유지호의 작품은 “붉은 울음이 온 바다를 적시고 있다”로 시작하여, “그래서 하나님은 붉은 눈물로 하루를 돌아보게 하는가 보다”라는 신앙적 언술로 마무리한다. 또한 “어둠이 한 올 한 올 매듭을 지으며 다가와도”와 같은 아름다운 은유가 “불꽃처럼 타오르는 믿음은 꺼질 줄 모른다”와 같은 직유의 이미지로 마무리한다.
많은 작품이 응모되기도 했지만 작품의 수준도 그만큼 상승했음을 느꼈다. 국민일보의 신춘 신앙시 공모는 참으로 하나님이 내리신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유승우 심사위원장 (시인, 문학박사, 인천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