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시 공모 당선작-대상] 달팽이와 나
입력 2013-03-14 17:25 수정 2013-03-14 17:29
텃밭 상추잎에 따라온 달팽이
수돗물 세례 받고 빗장을 지르면
안으로 걸어 닫은 캄캄한 한 채의 집이지요
무른 달팽이보다 되레 놀란 나는
푸른 잎 쌈 싸 먹고 푸른 똥 누는
느리고 답답한 채식주의자
푸성귀 식탁이 나를 부르는 사이
그는 안테나 내밀어 적진을 탐지하지요
무른 달팽이보다 더 무른 나에게
쑥갓깻잎오이가지가 어찌하여
뼈가 되고 힘줄이 되는지요
쌀보리콩수수가 어찌하여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눈물의 기도가 되는지요
한 채의 집을 들어 올려 텃밭으로 가는 나는
느리고 답답한 채식주의자
푸른 잎 갉아먹고 더디 깨닫는
무른 달팽이보다 더 무른 나는
제인자
수상 소감
텃밭 일구며 부활은혜 체험
서두르지 않고 천천이 갈 것
작년엔 텃밭을 일구어 재미가 쏠쏠했어요. 상추, 쑥갓씨를 뿌리고 고추, 가지모도 내고 토마토, 오이 모종을 세우고 호박 구덩이도 팠어요. 그러나 척박한 밭뙈기에 연둣빛 새순이 오르자 유기농 농사의 친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죠. 생식을 즐기는 벌레들의 잔치, 그러니까 한솥밥 먹는 식구처럼 벌레들과 친해지기로 작정했던 봄, 여름이 가는 동안 내 안에서 날마다 부활하는 은혜를 깨달았어요. 무른 달팽이가 햇볕에 말라죽지 않도록 몸에다 집을 붙여주신 하나님, 지워주신 내 짐이 아버지 배려인줄 압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따라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