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시 공모 당선작-우수작] 그렇다면, 나사들은
입력 2013-03-14 17:26
낡은 옷장 하나
아파트 공터 한쪽에 웅크리고 있다
이미 세월 저쪽으로 종적을 감춘 문짝
옷가지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고양이 그림자가 차곡차곡 겹치고 비워지는 사이
목련 나무 마른 이파리 몇이 누워 있다
그렇다면, 나사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를 조이던 시간
나사가 헐거워지자 자주 삐걱대고
아귀가 맞지 않았다
나사 풀린 사람처럼 자주 입이 벌어졌다
제자리를 지키지 못한 나사들이
나를 바깥으로 내몰았다
공터에 뿌리박은 옷장
나뭇가지 그림자들을 받아 건다
밤마다 가로등의 지친 눈빛을
오갈 데 없는 바람들을 재워준다
차곡차곡 수납되는 먼지들의 나이테
문득 날아든 풀씨 하나 싹을 틔우고,
비워서 더 많은 소망을 채우는 날들
시간의 나사가 풀릴수록
나는 점점 나무가 된다
나무들은 질긴 나사
제자리 하나 꽉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
정미경
수상 소감
지치고 힘든 이들을 위해 더 정진
간절한 기도들이 깨어나는 계절입니다.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새 잎을 피우는 나무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초록이 전해주는 말을 듣습니다. 내 안에도 새봄이 깨어납니다. 힘든 시간을 견딘 언어들에게 따스한 희망을 전해줍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기에 서두르지 않을 것입니다.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시를 쓰기 위해 더욱 정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