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소설 형식으로 전개한 ‘궁녀 24시’… ‘궁녀의 하루’

입력 2013-03-14 17:40


궁녀의 하루/박상진/김영사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엔 왕이 수라를 드는 동안 수라간 나인들이 무리를 지어 엎드려 있는 장면이 나온다. 고증을 거친 실제의 재현이다. 왕과 왕비가 물린 퇴선상의 음식은 퇴선간(수라상을 차리고 물리던 곳)에서 나인들이 나이순으로 나눠 먹었다. 이는 궁녀들을 위해 따로 밥을 짓지 않는다는 내규에 따른 것으로 음식이라도 넉넉히 돌아가면 운수 좋은 날이었다.

궁녀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쥐부리 글려’ 행사였다.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쥐나 해충들의 입부리를 지지는 민가 풍습이 궁궐 행사로 차용된 것인데, 섣달 그믐날 술시(오후 7∼9시)에 젊은 내시들은 횃불을 들고 후원에 집결시킨 애기나인들의 얼굴 가까이에 열십자를 그으며 “쥐부리 글려! 쥐부리 지져!”라고 외쳐댔다. 목적은 입단속이었다.

방굿례는 궁중 어른들 앞에서 방귀를 뀌는 실수를 한 애기나인의 본가에서 음식을 떡 벌어지게 차려와 궁녀들끼리 나눠먹는 풍속이었다. 자신의 실수로 본가에 무거운 짐을 지운다는 부담감 때문에 다시는 실수하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궁녀들은 물품으로 월봉을 받았다. 상궁의 경우 중미(중등급 쌀) 2되 5홉, 콩 2승, 감장(단 간장) 4홉, 청장(진하지 않은 간장) 1홉 6작을 지급 받았고 이밖에 석수어 2개, 청어 1개 반, 진어(준치) 반 개, 밴댕이젓과 백새우젓 각 7작 5리, 소금 5작도 받았다. 구한말에는 물품 대신 돈으로 받았다. 왕족이 거처하는 처소에 근무하던 지밀상궁에게 지급된 196원이 가장 높은 보수였다.

궁녀들은 입궁한 지 15년이 되면 관례를 올리고 정식 나인이 됐다. 말이 성인식이지 결혼식이나 다름없었다. 말하자면 신랑 없는 결혼식이었던 것이다.

가끔 스캔들도 벌어졌다. 현종 8년엔 대비전 나인이 같은 궁궐에 서리로 근무하는 형부와 눈이 맞아 임신하는 바람에 참수형에 처해졌다. 사적인 일을 도모할 수 없을 것 같은 궁녀들의 일상에도 예외는 있었으니, ‘궁녀 24시’가 보여주는 것은 실로 ‘궁녀의 모든 것’에 해당한다.

조선 최고의 갑부 궁녀가 된 박 상궁, 일본에서 성녀로 추앙받는 오타 주리아, 주한 프랑스 공사 플랑시와 결혼한 리진 이야기도 읽는 재미를 더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역사의 아웃사이더인 궁녀 이야기를 소설 형식으로 전개하고 있는 접근방식이 새롭다. 저자는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