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손 잡으라, 함께일 때 삶은 가능하다… ‘투게더’

입력 2013-03-14 17:33


투게더/리처드 세넷/현암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진원지인 미국 뉴욕 월가. 갑자기 실직자가 된 화이트칼라들을 집단 인터뷰한 저자가 물었다. 이전 직장에 다시 돌아가고 싶으냐고. 이에 ‘노(NO)’라고 한결같이 답하는 그들은 한때 일했던 일터와 동료들에게 애착이 없다는 걸 알고 놀란다. 금융 재앙의 여파를 겪으며 과거 동료들과 쌓은 협력이 얼마나 취약했던가를 깨달은 것이다. 과거에는 달랐다. 1970년대 보스턴의 백인 노동자 계급의 가정을 인터뷰했던 저자는 직장 동료들 사이에 강력한 비공식적 연대가 있음을 발견했다. 상사와 부하는 대놓고 불평을 했지만 서로 존경했고, 곤경에 처하면 발 벗고 도와주었다.

40년 사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조직의 한 부서가 다른 부서와는 교류하지 않고, 자기 부서의 이익만 추구하는 이른바 ‘사일로 효과’가 극에 달한 현상 이면에는 과도한 스트레스, 이메일 소통, 제로섬식 보너스 등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협력이 사라진 시대에 협력하라고, 그래야 우리는 함께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말고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숨 막히는 경쟁 사회다. 일자리를 놓고 세대 간 경쟁이 벌어지고, 아파트 층간 소음 같은 사소한 문제로도 이웃 간 살인이 벌어지는 살벌한 사회, 그러면서 영화 ‘레미제라블’에 열광하며 협력에 목말라하는 대한민국 사회이기에 책이 던지는 울림은 크다.

뉴욕대와 영국 런던정경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유럽 지식인 사회에서 주목받는 몇 안 되는 미국인 학자다. 그가 지향하는 메시지가 ‘미국적’이라기보다는 ‘유럽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은 다소 집중력을 요구한다. 저자도 ‘지적인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썼다면서 그들을 ‘왜 그것이 문제가 되는가’라는 물음을 제대로 던지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 그런 독자들에게 책을 소개한다.

책은 3부로 구성돼 있다. 각각은 협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약해지며, 강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특히 1부 협력의 역사에서는 서구의 종교개혁이 협력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는데, 16세기 독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한스 홀바인의 그림 ‘대사들’에 나타난 수학 책, 루터파 교회의 성가집, 육분의(콤파스) 등의 도상을 통해 협력이 키워드로 부상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사회상을 파헤쳐 지적 즐거움을 준다.

2부에서는 아이들이 사람보다 상품에 더 의존하는 학교, 파트타임 노동이 관계를 해체시키는 직장 등 경쟁적 사회에서 비협동적 자아가 출현하는 현상을 그려낸다. 이는 ‘피로사회’가 만들어낸 냉소주의자의 출현에 다름 아니다.

책의 미덕은 3부 협력의 강화다. 이 책이 특히 유의미한 건 협력하라고 외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협력의 기술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주는 데 있다. 재외 한국인의 사례까지 나와 흥미롭다.

저자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인 이민자들은 당시로선 혁신적인 하루 24시간 영업을 내건 상점 형태로 틈새시장을 파고들어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한국인 이민자들은 ‘회전신용계정(계)’을 만드는 등 자기끼리 협력은 잘 했지만 다른 종류의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못했다.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멸시했다. 그 결과, 익히 아는 1992년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으로 폭발한다. 이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인들이 채택한 협력의 기술은 침묵의 협력이다. 해서는 안 될 말은 하지 않는 감정적 거리두기로 문제를 치유해 갔던 것이다.

이렇듯 일터에서, 정치 현장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온라인에서 어떻게 협력하고 대화할 수 있는지 탐구하는 저자가 협력의 기술로 거리두기를 통해 낯선 이를 이질적인 채로 받아들이라고 제안하는 대목은 일견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이것은 함께 행동하자는 연대의 구호와 대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통일성을 강조하는 하향식 연대야말로 연대 자체가 분열적이라면서 협력 그 자체가 공동체 목적인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에서는? 다름 아닌 대화의 기술이 필요한데, 이는 곧 잘 듣는 기술을 의미한다고. “관찰하지 않는 사람은 이야기를 잘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저자는 상대방이 무엇을 말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발언만이 아니라 동작과 침묵까지 파악하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아를 깨트리는 듣기의 예술’은 바로 리허설을 할 때 우리가 그 진가를 확인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 공감을 위한 우회적 화법을 제안한다. 그가 추천한 ‘아마’ ‘나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은데’ 식의 가정법 화법을 써보는 건 어떨까. 김병화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