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오상봉] 한·미 FTA 선점효과 누릴 시간 없다
입력 2013-03-13 17:38
“품질과 서비스로 미국 소비자 사로잡고 정부는 무역전문인력 양성 지원해야”
기대와 우려 속에 출범한 한·미 FTA가 내일로 1주년을 맞게 되었다. 2007년 6월 양국 정부가 공식 서명한 이후 우여곡절과 추가 협상 끝에 4년9개월 만에 지난해 3월 15일 마침내 발효된 것이다.
한·미 FTA를 통해 우리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1.9%, 세계 수입시장의 13.1%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을 중국 일본 등 경쟁국들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선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지난해 EU 재정위기와 세계경제 침체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2년 연속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하고, 세계 무역 8강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미국, EU, 아세안 같은 거대 경제권과의 FTA가 우리 수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한·미 FTA 발효 후 지난 1년간(2012년 3월∼2013년 2월) 대미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8% 증가한 반면 수입은 9.4% 감소했다. 그 결과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사상 최대인 160억 달러를 기록했다. 대미 수출을 FTA 특혜관세 수혜 여부에 따라 분석(2012년 3∼12월, 미국의 대한국 수입 기준)해 보면 FTA 수혜 품목 수출은 14.6% 증가한 반면 비수혜 품목은 2.9% 감소해 명암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한·미 FTA는 양국 간 투자 확대에도 크게 기여했다. 미국의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는 지난해 2∼4분기 동안 전년 동기 대비 70.5%나 증가했다. 이는 외국인 투자 평균 증가율 19.2%보다 4배 가까운 수준이다. 우리의 대미 투자 역시 크게 증가하고 있다. 미국은 2008년부터 중국을 제치고 우리나라의 최대 투자 대상국이 되었다.
미국은 지난 2003년 우리나라의 수출 대상국 1위 자리를 중국에 내주었다.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 비중은 2000년 21.8%를 정점으로 10여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해 2011년에는 10.1%까지 하락했으나 지난해 처음 상승세로 전환했다.
집권 2기를 맞은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세계 주요 경제권과의 FTA 추진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월 연두교서에서 미·EU FTA(TTIP·범대서양 무역투자동반자협정) 협상 개시를 선언했다. 오는 6월까지 협상을 시작해 2014년 말까지 미·EU FTA를 타결한다는 계획이다. 전 세계 GDP의 절반과 세계 교역액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미국과 EU가 FTA를 통해 관세·비관세 장벽을 제거하고 새로운 기술표준과 무역규범 등을 제정하는 세계 무역의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본도 조만간 EU와의 FTA 협상을 본격화하고 TPP 협상에도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참여는 일·미 FTA 체결 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미국, EU와 이미 FTA를 시작했기 때문에 경쟁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TTIP를 통한 높은 수준의 기술표준과 무역규범 제정은 우리나라와 같은 역외국들에는 새로운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미·EU, 일·EU FTA와 일본이 참여하는 TPP가 발효될 경우 양대 시장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선점 효과는 크게 감소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은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미국시장 진출에 적극 나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은 최고의 품질과 서비스를 갖춘 제품만 살아남는 세계 최대 단일시장이다. 한·미 FTA 1주년을 맞아 우리 기업들은 FTA 특혜관세를 활용, 미국시장을 내수시장화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미국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품질과 디자인의 고급화, 차별화된 마케팅과 서비스, 그리고 경쟁력 있는 가격을 바탕으로 미국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또한 원산지 기준 충족과 사후검증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정부와 무역 유관기관은 중소기업의 원산지 관리 시스템 구축을 지원하고 무역 전문인력의 양성과 채용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오상봉(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