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담뱃값 인상 논란에 대하여
입력 2013-03-13 17:39
여당 발 담뱃값 인상안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대한의사협회는 12일 성명을 통해 김재원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지난 6일 발의한 지방세법 및 국민건강증진법 일부 개정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김 의원이 제안한 법안은 현재 2500원대 담뱃값을 4500원으로 인상하자는 것이다.
국내 최대 흡연자 단체인 ‘아이러브스모킹’ 회원들은 같은 날, 서울 계동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담뱃값 인상 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담뱃값을 인상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회에서 “(담뱃값을) 올릴 때가 됐다”며 김 의원 측을 거든 게 불씨가 됐다.
담뱃값 인상안의 명분은 흡연율 감소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 중 흡연자는 약 1020만명이다.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세계인의 평균 흡연율은 성인 남자 36%, 여자 7%다. 같은 해 우리나라 성인 흡연율은 남자 48%, 여자 6%다. 이 흡연율은 수년째 거의 꼼짝 않고 제자리걸음이다.
무슨 수가 필요할까. 담뱃값을 올리는 게 답일 수 있다. WHO도 ‘가격 인상이 가장 효과적인 금연 유도 수단’이라며 각국 정부에 가격규제정책의 시행을 권하고 있다. 담뱃값 인상으로 얻는 효과는 크게 3가지다. 금연 의지 제고 및 실천자 증가, 흡연 관련 질환의 예방 및 보험진료비 절감, 세수증대다.
먼저 담뱃값과 흡연율의 함수관계. 담뱃값이 100% 오르면 담배 소비량은 최소 18%, 최대 34% 줄어든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담뱃값을 10% 인상하면 소비량이 3.7% 준다는 보고도 있다.
담뱃값을 올리면 세수입이 늘어나는 효과도 나타난다. 시판 2500원짜리 담배에는 담배소비세(641원), 지방교육세(320.5원), 부가가치세(227.27원) 등 세금 1188.77원과 국민건강증진기금(354원), 폐기물부담금(7원) 등 부담금 361원이 붙어 있다. 담뱃값을 올리면 이들 제세부담금도 덩달아 같은 비율로 는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박근혜 대통령의 4대 중증질환 치료비 100% 보장 공약 달성에 필요한 재원 1조5000억원을 마련하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란 얘기가 흡연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흡연 관련 질환의 예방과 보험진료비 절감 효과도 기대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얼마 전 펴낸 ‘최근 5년간 건강위험요인으로 인한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 분석 보고서’를 보면 흡연 때문에 지출된 보험진료비가 2011년 현재 1조633억원에 이른다. 이 돈은 뇌혈관질환(24.1%), 고혈압(22.2%), 기관지 및 폐암(12.7%), 허혈성 심장질환(8.8%) 등의 진료비로 각각 사용됐다. 금연 실천 인구를 늘리면 이들 흡연질환 발생위험을 줄이고, 그만큼 보험재정도 보호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금연 결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흡연에 따른 심리적·경제적 부담이다.” 서홍관 한국금연운동협의회장의 말이다.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이제 상식 축에도 들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담뱃값을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올리는 게 상책인 셈이다. 나는 일부 흡연자들의 비판처럼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꼼수(?)가 아니라면 갑당 2500원 이상 대폭 올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500원 안팎의 소폭 인상은 일시적으로 금연의지를 북돋울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흡연욕구를 꺾지 못해 장기적으로 되레 흡연자들의 부담만 키우는 결과를 낳게 될 뿐이다.
단, 담뱃값을 올릴 경우 조건이 있다. 그 인상분이 건강보험 재정적자 보전 등 다른 용도로 쓰이지 않고 오로지 흡연자들의 금연 및 건강관리 사업에만 쓰이도록 한정하는 게 옳을 듯하다. 그래야 해롭고 값도 비싼 담배를 계속 피우는 흡연자들이 덜 억울하지 않겠는가.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