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한민수] 대통령의 고독

입력 2013-03-13 17:41 수정 2013-03-13 17:45


지금은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서 고독(孤獨)의 그림자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공식 행사장에서 양복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집어넣고 일장 연설을 할 정도로 언제나 당당했다. 상대가 맘에 들지 않으면 정면으로 들이받아 버리는 승부사적 기질도 대단했다.

그런 그도 2005년 가을 어느 날 유난히 외로움을 탔다. 청와대 행사가 끝난 뒤 자리를 뜨려던 열린우리당 중진 의원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저와 함께 관저에 올라가서 한잔 합시다.” K의원은 그처럼 고독한 대통령의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 스스로 외롭다고 표현했다. 보다 못한 K의원은 대통령에게 성경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외로움은 독단으로 갈 수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집권 초기 고독과 싸웠다. ‘광우병 소고기’ 협상 파문으로 촛불시위가 걷잡을 수 없게 번졌을 때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 올랐다. 청와대 실장과 수석들이 일괄 사퇴하며 주위를 떠나려 하자 이 대통령은 금식기도까지 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두 전직 대통령의 고독을 새삼스레 끄집어낸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느낄 ‘고독’이 우려돼서다. 실제 주변에는 박 대통령의 청와대 생활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대통령의 고독은 일반인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라 국정 운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얼마 전 라디오에 나와 “밤이 되면 청와대 관저엔 경호인력 3명밖에 없다. 넓고 괴괴하다. 밤늦게 가면 귀곡산장 같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이라도 있으면 서로 어울려 텔레비전도 보고, 저녁 때 간식도 먹고 하겠으나 그런 게 아닌 상황에서는 아주 더 외롭다”고 박 대통령을 걱정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업무 스타일은 집으로 일을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도 낮에 업무보고를 받고 삼성동 사저에서 살펴보다 궁금한 게 있으면 한밤중에 수시로 전화기를 잡았다. 외로움을 탈 시간도 없이 일에 파묻혀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집권 5년 내내 그리 살 수는 없다. 전직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B씨는 ‘집권 2년차 증후군’을 자주 언급한다. 그는 “처음에는 참모들에게 이것저것 묻고 본인 생각을 바꾸기도 하지만 2년차에 들어서면 어떤 아집 같은 게 생긴다”면서 “내가 하는 게 다 옳다, 내가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부터 다른 사람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독이 독선(獨善)과 만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꼬인다. 나홀로 생각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은 장점이 있겠지만 독단적으로 판단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인수위 인사 혼선도 여기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각계각층 수시로 만나야

최고 권력자 주변에 수시로 조언을 하고, 때론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의 관저에는 최측근 조언자가 있었다. 권양숙, 김윤옥 여사는 세간의 여론을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져 있다. 박 대통령에게는 그런 조언자가 없다. 관저에는 경호원과 진돗개 강아지 ‘새롬이’ ‘희망이’뿐이다. 동생 가족을 불러 함께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박 대통령은 지금부터 고독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선 집무실과 비서진 건물 구조를 바꾸면 어떨까. 걸어서 15분이나 걸리는 거리를 좁혀 미 백악관처럼 대통령이 참모들과 수시로, 격의 없이 만나는 거다.

관저에서 각계각층 사람들을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도 좋다. 국민들에게 공개해도 되고, 비공개도 상관없다. 전직 대통령이 했던 주입식 라디오 연설 대신 국민들의 진솔한 속얘기를 듣는 자리다. 그리하면 박 대통령이 재임 중에 고독을 느낄 시간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한민수 정치부장 ms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