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구조적 병리현상 돼가는 학교폭력

입력 2013-03-13 17:36

경북 경산에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학교폭력 때문에 투신자살한 사건은 그동안 쏟아져 나온 학교폭력 대책이 맥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대구·경북지역에서만 31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런 정도면 학교폭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학교별로 학교전담경찰관과 상담교사를 배치했다. 신고함을 설치·운영하고, CCTV도 대폭 늘렸다. 그러나 이런 백화점식 대책들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을 보면 정부가 문제의 근원을 도외시한 채 드러난 현상에 대처하는 데만 급급했음을 알 수 있다.

학교폭력의 뿌리는 결국 기성사회의 폭력이다. 아이들은 결국 어른의 거울인 것이다. 사회의 폭력은 물리적 폭력만이 아니라 모든 부당한 착취와 강압을 포함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의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빼앗고, 힘 있는 계층의 부당한 금권행사와 편법이 없는 계층을 억울하게 만드는 것도 넓은 의미의 폭력이다. 학생들은 ‘한번 억울하면 끝까지 억울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내면화하면서 억울해야 할 희생양을 찾는다. 1980년대 초 국민들이 정변으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신 ‘싹쓸이(전두환) 고스톱’을 즐겼던 것과 비슷한 심리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한 인격이 다른 인격에 가하는 폭력의 병폐와 그것이 몰고오는 다양한 부작용에 대해 부단히 설명해야 한다. 한마디로 인권교육이다. 인권교육과 상담이 효과를 거두려면 학교폭력 가해자를 포함한 모든 학생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 전제돼야 한다. 우리 교육현장에서 그것은 물론 쉬운 게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교사의 역할이 그만큼 막중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학교폭력을 성폭력, 가정폭력, 불량식품과 함께 4대 악(惡)으로 규정했다. 학교폭력은 가해자 처벌이나 일방적 척결 의지 만으로는 근절되지 않는다. 그것은 교과부의 정확한 현실진단과 교사들의 열정적 지도여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