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봄바다서 낚은 쉼표와 느낌표… 동백꽃 붉게 물든 ‘삼백리 한려수도’

입력 2013-03-13 17:26


예향 통영에 가면 누구나 통영 예찬론자가 된다. 그리운 사람에게 5000통의 연서를 보낸 청마 유치환의 시어가 우체국 골목에 널브러져 있기 때문은 아니다. 김춘수의 ‘꽃’보다 아름다운 섬들이 많아서도 아니다. 달동네 사람들의 애환이 화려한 벽화로 거듭난 동피랑의 풋풋한 생명력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통영을 예찬하는 까닭은 이 모든 것들을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게 보듬은 ‘삼백리 한려수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삼백리 한려수도’는 경남 통영의 한산도에서 전남 여수의 오동도에 이르는 120㎞ 길이의 연안수로를 말한다. 갈매기 나는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고, 겹쳐지고 포개진 섬의 능선은 수묵화를 펼쳐놓은 듯 아름다워 일찍이 유치환을 비롯한 예술가들의 작품 무대로 각광을 받았다.

봄빛 완연한 한려수도는 돛처럼 우뚝 솟은 미륵산 정상에서 만나야 더욱 황홀하다. 해저터널 위를 달리는 충무대교나 야경이 아름다운 통영대교를 건너면 미륵도를 한 바퀴 도는 산양일주도로가 삐뚤삐뚤 원을 그린다. 동백나무 가로수가 멋스런 23㎞ 길이의 산양일주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오른 드라이브 명소.

“노을진 한산섬에 갈매기 날으니/ 삼백리 한려수도 그림 같구나/ 굽이굽이 바닷길에 배가 오는데/ 님 맞은 섬색시의 풋가슴 속은/ 빨갛게 빨갛게 동백꽃처럼 타오르네/ 바닷가에 타오른다네”

가수 이미자의 ‘삼백리 한려수도’는 서럽도록 붉은 동백꽃이 만개한 봄날을 노래한다. 빨갛게 멍든 동백꽃으로 단장한 산양일주도로는 한산도를 비롯해 비진도, 연화도, 욕지도, 연대도, 학림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이웃. 쪽물을 풀어놓은 듯 푸른 한려수도를 오가는 어선들과 어우러져 걸음마다 시가 되고 그림이 된다.

석양이 아름다운 달아공원 언덕과 이국적 풍광의 ES통영리조트가 차창 밖으로 사라지자 미래사를 거쳐 미륵산에 오르는 어둑한 산길이 등고선을 그린다. 호젓한 산길은 수령 80∼90년의 편백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 향으로 그윽하다. 아담한 산사인 미래사의 주차장에서 해발 461m 높이의 미륵산 정상까지는 약 1.4㎞로 30∼40분 거리.

미륵산은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를 타고 오를 수도 있지만 한산도에서 떠오르는 해돋이의 벅찬 감동을 맛보려면 신새벽에 어둠을 뚫고 산행하는 수고를 더해야 한다. 편백나무 숲을 돌아다니는 바람소리와 함께 산책을 하다보면 어느새 소나무와 떡갈나무가 울창한 오르막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숲이 끝나는 곳에서 첫 번째 전망대인 신선대를 만난다.

시인 정지용의 통영 방문을 기념하는 시비가 홀로 외로운 신선대는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통영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 암청색 어둠 속에서 가로등을 밝힌 통영 시가지가 동백꽃 수만 송이가 피어있는 듯 밤하늘의 은하수가 내려앉은 듯 황홀하다. 통영항에서 출항한 어선의 궤적을 쫓아 바다 쪽으로 눈을 돌리면 한산도 등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짙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윤곽을 드러낸다.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 더욱이 한산섬을 중심으로 하여 한려수도 일대의 충무공 대소 전첩기를 이제 새삼스럽게 내가 기록해야 할만치 문헌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미륵도 미륵산 상봉에 올라 한려수도 일대를 부감할 때 특별히 통영포구와 한산도 일폭의 천연미는 다시 있을 수 없는 것이라 단언할 뿐이다. 이것은 만중운산 속의 천고절미한 호수라고 보여진다.”(정지용의 ‘통영5’ 중에서)

‘향수’의 시인 정지용은 해방 직후 유치환의 안내로 미륵산 신선대에 올랐다. 그리고 발아래 펼쳐지는 한려수도의 황홀한 풍경에 취해 할 말을 잊었다. 훗날 정지용은 부산 통영 진주를 둘러보고 쓴 기행문 ‘남해오월점철’에서 통영의 바다와 섬을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고 고백했을 정도.

신선대전망대에서 나무데크를 오르면 통영상륙작전을 기념하는 전망대가 나온다. 개전 사흘 만에 서울을 함락한 북한군은 1950년 8월 15일 무방비 상태에 있던 통영을 점령한다. 이에 해병대는 이틀 뒤인 17일 통영 동북단에 위치한 장평리에 기습상륙해 19일 통영 시가지를 탈환한다. 한국전쟁 중 최초의 한국군 단독 상륙작전이었다.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찬사는 이때 외신기자의 입을 통해 탄생했다. 이순신의 한산대첩에 이은 통영바다에서의 두 번째 승전이었다.

통제영의 옛 봉수대와 이웃한 미륵산 정상은 통영 시가지를 비롯해 570개에 이르는 통영의 섬과 거제도, 여수 금오도가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곳. 한산도를 붉게 채색하며 떠오른 태양이 하루 종일 삼백리 한려수도를 달려 금오도로 낙화하는 모습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명소이다.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다 빛은 맑고 푸르다. 남해안 이래에 있어서 남해도와 쌍벽인 큰 섬 거제도가 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현해탄의 거센 파도가 우회하므로 항만은 잔잔하고 사철은 온화하여 매우 살기 좋은 곳이다.”(박경리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 중에서).

통영 출신 예술가 중 통영을 극찬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도 예외가 아니다. 박경리는 일찍이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 제1장에서 통영을 살만한 땅으로 묘사했다. 한려수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미륵산 서쪽 자락에 영원한 안식처를 마련한 것도 이 때문이다.

통영이 태어난 곳이든 거쳐 간 곳이든 예술가들에게는 통영이 마음의 고향이다. 그래서 시인 유치환과 김춘수, 시조작가 김상옥, 작곡가 윤이상, 화가 이중섭과 전혁림 등 예술가들은 차마 꿈에서라도 잊힐까봐 원고지와 오선지, 그리고 캔버스에 통영과의 인연을 각인한 것이리라.

통영=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