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축복이 축복되게 합시다
입력 2013-03-13 17:20
시편 67편 1∼7절
예루살렘이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 멸망당한 후 가나안에서 추방된 이스라엘이 다시 나라를 세운 것은 1948년입니다. 그러니까 거의 1900년 동안 유대인들은 나라 없이 세상을 떠도는 흩어진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흩어진 민족 이스라엘이 유럽의 경제를 움켜쥐었다는 점입니다. 유대인들이 정착한 곳에는 어디나 금융이 살아나고 경제가 부흥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이 있는 나라는 부강한 나라가 되고, 힘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역사가들은 유럽의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 근대화를 이룬 것도 유대인들의 기막힌 상술 덕택이라고 분석합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많은 나라들이 유대인들을 통해서 부를 얻었지만, 유대인들을 좋아한 나라는 한 나라도 없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추방을 당했고, 어떤 나라에서는 일정한 지역에서 모여 살아야 했으며, 심지어 직업선택에도 제한을 받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왜 이들은 이렇게 모든 사람과 민족들로부터 증오의 대상이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이 받은 축복의 특성을 기록하면서 그 답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1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라고 말합니다. 본문의 선언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그것이 성도에게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실 때 ‘창대하고 번성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은혜 받은 성도는 이 축복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이 축복이 저주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받은 부요와 축복을 잘 다뤄야 합니다.
축복의 독점은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장 2∼3절에도 아브람을 택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기록되어 있는데, “너는 복이 될지라…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복을 주신 이유가 바로 복의 근원, 복을 나누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유대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축복의 샘이 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샘을 독점했습니다. 그 샘이 담을 넘어 다른 민족에게 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기는 했지만 그 복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리들만이 하나님의 자손이요 구원의 백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민족을 배척하는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실수입니다. 이방 사람들이 유대인의 배척을 받으면서 역으로 이방 사람들이 유대인을 배척하는 문화가 팽배해지는 원인이 된 것입니다.
2절에는 이스라엘의 의무가 기록되어 있는데,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 알리소서”라고 하고 있고, 3절에 보면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우리가 받은 복을 나누는 것입니다. 성경은 명령합니다. ‘주라, 나누라, 베풀라, 섬기라, 봉사하라, 구제하라’고 말입니다.
나눔이 바로 축복의 완성입니다.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은혜로 20세기의 선민처럼 쓰임 받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다면,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증인이 되면서, 동시에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복을 나누는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함으로 축복을 완성하는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이것이 곧 우리가 받은 축복이 곧 진정한 축복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정병갑 일산 신성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