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오성삼 (20·끝)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마음의 빚’… 이젠 사회환원을
입력 2013-03-13 17:19
내겐 갚아야 할 빚이 참으로 많다. 더러는 갚았고 더러는 갚아가고 있지만 앞으로 갚아야 할 빚이 훨씬 더 많게 느껴진다. 일부 빚을 갚았다고 감히 말하는 것은 어쩌면 무례하고 잘못된 표현일 수도 있다. 내가 갚아야 할 빚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마음의 빚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건 내가 이전에 받은 도움을 돌려주려는 노력을 해보았지만 너무 미약함을 느낀다. 그 많은 도움이 있었건만 나의 무능함과 노력 부족으로 충분히 나눠줄 만큼 열매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돈과는 거리가 먼 교직에 종사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제일 먼저 마음의 빚을 갚은 곳은 월드비전이다. 유학생활 마지막 학기 가장 절박한 순간에 도움의 손길을 건네준 곳이기에 우선 돌려주고 싶었다. 교수 생활을 시작하고 책상 서랍에서 1000달러짜리 빛바랜 복사본 수표를 꺼내들고 한국월드비전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정작 전화를 걸었을 때 얼마나 돌려주어야 하는지 고민이 생겼다. 월드비전에 내가 받았던 도움을 돌려주리란 마음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얼마를 갚아야 할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얼마가 정답일까?’ 그때 받았던 1000달러의 도움을 두 배로 늘려 2000달러를 갚으면 되지 않을까. 아니다. 그 도움 때문에 오늘 내가 교수가 되었는데 단지 두 배로 갚는다면 내가 너무 인색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를 질책하며 정답 찾기에 골몰하다가 찾은 답은 받은 도움의 일곱 배, 7000달러다. 이유는 논리적이거나 산술적이지 않지만 명료했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7이란 숫자가 정답일 것 같은 생각 때문이다.
“7000달러를 보내드리겠습니다. 2000달러는 내게 도움을 준 월드비전 본부에 감사의 마음과 함께 전해주시고 나머지 5000달러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와 함께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날 오후 후원자들을 관리하는 부서의 직원이 직접 사무실을 찾아왔다. 당시 7000달러는 내 전세자금의 일부였다. 하지만 큰맘 먹고 행동에 옮긴 첫 번째 되돌림은 무거웠던 마음을 홀가분하게 해주었다.
월드비전을 통해 국내 아동들을 후원하기 시작한 것은 그 얼마 뒤의 일이다. 다달이 급여 통장에서 후원금이 빠져나갔다 그동안 나의 후원을 받는 가난한 나라 아동들의 감사 편지가 수북이 쌓여갔다. 편지를 받아들 때마다 혼자 되뇌곤 했다. “얘들아, 나도 예전에 너희처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이렇게 되었단다. 부디 희망의 끈을 놓지 말기 바란다.”
대학시절 정수장학금(이전 5·16 장학금)의 도움은 4년 동안 험난한 강을 포기하지 않고 헤엄쳐 건널 수 있도록 해준 에너지였다. 2008년 아내와 큰마음을 먹었다. 학창시절 받았던 정수장학금을 어려운 후학들을 위해 이자를 후하게 붙여 2000만원으로 돌려주었다. 그 돈은 정수장학회 총동창회의 ‘되물림 장학금’으로 가난한 집안 고등학생 10명에게 돌아갔고 뜻을 같이하는 동창회원들이 참여해 지속사업으로 확대해가고 있다. ‘사랑의 되돌림’은 두레교회의 북녘동포돕기운동에 1000만원을 기부하고 매년 후원하는 해외아동을 늘리는 것 등으로 이어졌다. 물을 마실 때 그 물의 근원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생각하는 마음을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 하던가. 남에게 받은 도움 그것은 언젠가는 환원해야 할 마음의 빚이란 생각을 한다.
자신이 가진 것을 필요한 사람과 나누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평온한 삶을 마감할까. ‘얻어 먹을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는 꽃동네 이야기를 떠올리며 험난했다고 생각한 나의 학창시절은 차라리 풍성한 축복의 나날이었음을 깨닫는다. 지금 비를 맞고 있는 가난한 이웃들에게 비가 그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하며 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정리=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