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혜노믹스 본격화] 朴 정부, 금융·사정당국 동원 칼 대는 이유는… 주식시장 ‘검은돈 놀이터’ 전락

입력 2013-03-12 18:38 수정 2013-03-12 22:29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검은 돈의 놀이터’다. 주가조작 등 금융범죄를 저지르고 수십억원을 챙기더라도 처벌이 미미해 벌금 수백만원만 내면 된다. 재벌이 자녀에게 편법으로 부를 상속하고, 사채업자 등의 검은돈이 합법적 자금으로 ‘세탁’되는 곳이 주식시장이다. ‘테마주’라 불리는 근거 없는 투자 패턴이 존재하는 곳도 우리나라뿐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개인 투자자가 많지만 불공정 거래 등 왜곡된 금융질서 때문에 개인만 손해를 보면서 ‘개미 지옥’이라는 악명까지 달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국세청과 금융·사정당국을 총동원해 주식시장에 칼을 대는 것은 무너진 금융질서를 바로잡고 자본시장에 유입된 지하 자금을 발본색원하는 1석2조의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편법·탈법의 온상=주식시장은 온갖 편법·탈법 행위로 몸살을 앓은 지 오래다. 기업 대주주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나 친인척에 대한 편법 상속·증여를 일삼는 부자들이 많은 것은 ‘한탕’만 제대로 하면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까지 막대한 돈을 합법적으로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내부 정보에 밝은 기업 고위층 입장에서는 편법·탈법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동생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의 편법 증여행위가 대표적이다. 신 회장은 자신의 아들·딸은 물론 갓난아기였던 손자 등에게 120억원을 빌려준 뒤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대선주조 주식을 사도록 했다. 이들은 2005년 120억원으로 대선주조 주식 31%를 사들인 뒤 2007년 전량 매각했다. 신 회장 일가가 거둔 시세차익은 3000여억원에 이른다. 아들·딸·손자 등은 빌린 돈을 갚고 양도소득세를 납부한 뒤에도 최소 800억원의 이득을 취했다.

신 회장 일가에 대한 편법 증여 논란이 불거지자 국세청은 2011년 세무조사에 들어갔고, 120억원의 증여세를 물렸다. 신 회장 측은 이에 대해 조세법률주의에 위배된다며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한 상태다.

기업 대주주의 ‘농간’에 개인 투자자들이 피눈물을 흘린 사건은 비일비재하다. 2010년 12월에는 회사 회장과 대표가 공모해 사채업자로부터 자금을 빌려 신주인수권 행사대금을 내고 주식을 사들인 뒤 곧바로 빌린 돈을 갚고도 마치 신규 투자자금이 들어온 것처럼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실이 금융감독원에 적발됐다. 이들은 순식간에 22억원을 챙겼다. 이 회사가 상장 폐지되면서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은 막대한 손해를 봤다.

이처럼 주식시장에서 편법·탈법이 판을 치자 정부도 적극 대응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국세청은 그동안 부동산 과세를 위주로 했던 ‘재산세국’을 ‘자산과세국’으로 변경하고, 주식거래만을 전담 조사하는 ‘자본거래관리과’를 신설키로 했다.

◇수십억원 챙겨도 벌금은 수백만원뿐=금융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미미한 처벌에 있다. 김동원 연세대 객원교수(전 금감원 부원장보)는 2011년 말 ‘투자자보호와 금융범죄’ 보고서에서 2010년 기준 한국거래소가 적발한 불공정 거래 혐의 338건 가운데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18건(5.3%)밖에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2009년에도 한국거래소가 적발한 333건 가운데 127건(38.1%)만을 검찰이 기소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등 7개 금융관련법을 위반한 금융사범의 징역형 비율은 2009년 10.2%, 2010년 11.6%에 그쳤다. 2010년 기준으로 1000명의 금융사범이 있다면 이 중 53명만이 검찰에 기소되며 6명만이 징역형을 받았다는 의미다.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되면서 금융범죄는 매년 증가세다. 금융감독원이 접수한 불공정거래 사건은 2010년 194건에서 2012년 271건으로 39.7%나 증가했다. 방식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서울대 정순섭 법대 교수는 “범죄로 처벌하기 위해선 그 요건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해야 하는데 주가 조작(시세 조정) 행위 유형이 너무나 다양해 규정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이 불공정거래 과징금 부과제도를 재추진하는 것도 이런 맹점을 감안해 재산상 불이익을 주자는 의도다.

강준구 진삼열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