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지형은] 좋은 나라 되려면

입력 2013-03-12 17:32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우리나라 좋은 나라.” 윤석중 선생이 해방되던 해에 지은 동요시다. 어릴 때 이 노래를 많이 들으며 자랐다. 어떤 나라가 좋은 나라일까. 다음 글과 같은 나라라면 어떨까. 괄호 안에는 나라 이름이 들어가는데 어느 나라인지는 상상해 보시라. 참고로 500년 전의 나라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즐겁게 사는 것보다 더 큰 복지 생활이 어디 있겠습니까? ( ) 사람들은 식량에 대한 걱정이나 아내의 투덜거리는 불평이나 자기 자식의 가난함에 대한 걱정이나 자기 딸의 결혼 지참금에 대한 걱정으로 괴로워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과 가족들(아내, 자식들, 손자들, 증손자들, 그리고 지체 있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든 자손들)의 생계와 행복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너무 나이가 많아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활기 있게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분배되는 것과 똑같이 풍족한 물품이 분배됩니다.”

공정한 규칙 제대로 작동돼야

이 나라는 참 좋은 나라다. 몇 가지만 짚어보자. 사람이 사는 기본적인 상황은 동서고금이 같다. 먹는 것은 기본이다. 어느 나라든 기초 생계가 위협받는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 전체가 불안해진다. 절대빈곤층은 어떤 방법으로든 도와야 한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나머지 사람들이 품위를 유지하며 살려면 필요한 일이다. 식량 걱정이 없는 나라면 얼마나 좋은 나라인가.

자식 사랑과 걱정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나 사회 지도자들이 자식 때문에 망가지는 경우가 이런 단면이다. 자식 때문에 울고 웃고, 피붙이 때문에 욕심 부리고 무리수를 둔다. 청문회의 단골 메뉴는 직간접으로 혈육에 연관돼 있다. 병역면제, 위장전입이 대표적이다. 최근 영훈국제중학교 사건도 자식 교육에 연관된 기회 불균형이니 같은 맥락이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현안은 청년 실업이다. 이른바 ‘삼포’는 이와 연관돼 있다. 연애 포기, 결혼 포기, 출산 포기 말이다. 자식과 자손이 가난해지지 않고 결혼 비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나라면 얼마나 좋은 나라인가.

고령화는 선진국의 공통 과제다. 노인 빈곤은 우리에게 발등의 불이다. 노인 자살률이 전체 자살률보다 높다. 연금, 고령 인구의 삶의 질, 노동 인구 감소, 생산성 하락, 경제 경쟁력 약화 등이 고령화에 연결된 사안들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경제 상황이 보장되는 나라면 얼마나 좋은 나라인가.

위에 인용한 글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나오는 내용이다(육문사·200∼201쪽). 괄호 안에 들어갈 나라 이름은 ‘유토피아’다. 모어가 이 글을 쓴 것이 1515∼1516년이다. 유토피아는 이상향의 나라다. 그러나 이 글에는 당시 실재 사회의 온갖 악과 부조리가 반영돼 있다. 사회의 구조적인 부조리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소설적 상상력을 발휘해 쓴 글이다. 그때의 문제는 지금의 문제와 구조적으로 같다.

복지 문제 진중하게 다루길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가 되려면 인간 삶의 가장 기초적인 문제에서 공정한 규칙이 작동돼야 한다. 그 기본이 복지에 대한 정부의 개입과 관리이며, 돈이든 지식이든 많이 가진 사람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유토피아의 마지막 부분이 이렇다. “나는 유토피아의 사회 제도 중에는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채택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206쪽)

모어가 거의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현실적으로 비슷하게나마 이루어졌다. 북유럽 국가들의 오늘날 모습이다. 500년이 걸린 셈이다. 우리나라의 복지, 길게 바라보고 진중하게 계속 가야 한다고 본다. 해방 후 한 70년 걸려서 이만큼 왔으니, 잘했다.

지형은(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