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근미] 나를 향해 웃어보자
입력 2013-03-12 17:31
얼마 전 지인이 기획한 프로젝트 행사에서 인터뷰 관련 강의를 했더니 스튜디오 촬영권을 선물로 주었다. 유명 작가에게 공짜사진 찍으러 가기가 민망해 차일피일 미루다 마감일을 넘기고 말았다.
그러던 중 그 작가가 내 책을 읽고 자신의 블로그에 황송한 감상평을 남긴 게 연결고리가 돼 만남이 이뤄졌다. 자연스럽게 프로필 사진 얘기가 나왔는데 내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던 그가 천만뜻밖에도 ‘우울한 인상’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단 한번도 우울한 인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지라 충격을 받은 내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처음 만나 진지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렇게 비친 게 아닐까 추정했다. 평소 일과 관련된 사안이 아니면 외출을 잘하지 않는 데다 주로 혼자서 작업을 하니 별달리 표정 지을 일이 없었던 것도 원인일 수 있다. 거의 매일 모니터 앞에서 자판만 두드리니 남을 의식할 이유가 없는 것도 문제이다. 게다가 살도 찌고 얼굴도 처지기 시작하는 중년이니 오죽하겠는가.
사진작가는 촬영을 하기 전 이미지를 밝게 만드는 작업을 한다고 일러주었다. 사진은 밝고 화사한데 실물은 우중충한 인상이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밝은 이미지여야 정직한 사진이지 촬영할 때만 화사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건 거짓이라는 얘기였다. 날씬하게 보이고 싶다면 컴퓨터 보정이 아닌 다이어트를 하는 게 정석이라고도 했다.
집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서 나를 찬찬히 뜯어보니 우울한 인상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나를 위해 따로 표정을 만들 필요가 없으니 대충 지냈던 것이다. 곧바로 밝고 화사한 표정 짓기 연습에 돌입했다. 자판을 두드리다가 웃음 짓고, 골치 아픈 구상을 하다가 밝은 표정을 만들기도 한다.
앞으로도 계속 혼자 글쓰기 작업을 해야 하는데, 사진작가의 지적이 없었다면 우울하거나 무표정한 얼굴로 지낼 뻔했다. 다른 사람을 만날 때만 잠깐 밝아졌다가 다시 무채색의 공간에 갇혀 지내는 일이 반복됐을 것이다.
컴퓨터와 마주하고 일하는 이들을 보면 대개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모니터 옆에 작은 손거울을 놓고 자신을 향해 밝은 표정을 지으며 작업하는 건 어떨까. 다른 사람을 위해서만 미소 지을 게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나를 향해 활짝 웃어보자.
이근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