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병권] 정치인의 이성회복
입력 2013-03-12 17:38
“안철수의 재등장이 위기에 빠진 여야 정당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인문학적 담론이 넘친다. 학계는 물론 대기업의 CEO까지 이런저런 인문학 강의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돈을 내야 하는 유료 인터넷 인문학 강좌도 문전성시다. 가히 한국판 인문학 르네상스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독서 인구가 줄고 책이 팔리지 않는다고 아우성이지만 인문학 붐은 우리의 저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 사회과학 쪽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오랜 사회 갈등요소인 노사문제나 지역차별 여성차별 소수자 보호 등 공론화할 수 있는 주제가 한둘이 아닌데도 도대체 담론 형성이 되지 않는다. 몇몇 학자들이 독일 등의 예를 들면서 사회대통합을 위한 화해와 양보를 제안해봤지만 반향이 없다. 무려 3년이나 활동한 정부 주도의 사회통합위원회도 존재감이 미미한데 백면서생 한둘이 목청을 돋워봤자 누가 돌아보기나 할까.
사회과학의 초라함은 정치·사회 현상의 비판과 분석에는 빼어난 반면 실천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과연 그럴까. 대표 선수격인 정치학이나 사회학 분야에서 우리 현실에 맞는 분석틀이나 제대로 된 이론 하나 제시하지 못하고 비판에만 과도한 힘을 쏟기는 했다. 그렇다고 학자들에게 전적인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정치·사회 현상은 세계 어느 국가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역동적이고 가변적이다. 움직임의 주체가 되는 여야 정치인은 민주주의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탓인지 어디로 튈지 알 수도 없는 존재들이다. 이런 사람들의 집단인 정당은 말할 나위조차 없다. 도대체 지구상의 어느 나라 정당이 총선과 대선에서 모두 졌는데도 지도부가 멀쩡하게 살아있단 말인가.
그 나라 정치의 건전성과 민주성의 외부적 평가척도가 여야 정권교체라고 할 때 2002년 이후 10년 넘게 특정 계파가 당권을 오로지하고 있는 민주통합당은 당내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 대선 패배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인사가 엊그제 때늦은 참회를 했기에 그나마 염치없다는 말은 듣지 않게 됐다.
그렇다고 새누리당이 당내 민주주의를 꽃피워 정권재창출에 성공한 것도 아니다. 카리스마가 탁월한 걸출한 스타의 개인기로 대선고지를 돌파해 전략도 전술도 없는 야당을 우격다짐으로 코너에 몰아넣었을 뿐이다. 새 정권의 문을 연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국정주도권은커녕 입바른 말 한마디 못하고 있다. 왜 정치를 했으며 무엇 때문에 여당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단언컨대, 한국의 정당은 위기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정당의 존재감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아무 역할도 못하면서 국민의 속만 썩이는 이런 정당에 과연 국고보조금을 지급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예측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이런 집단을 연구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한때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의 등장으로 정신을 차리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던 정당들이 그가 잠시 사라지자 옛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이 단적인 방증이다.
지난 총선을 전후해 시민운동 스타들이 정당에 흡수된 이후 시민단체 활동도 위축됐다. 재기를 노리는 안 전 교수도 정당창당은 유보했지만 원내 세력화는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 정치 지형이 어떻게 펼쳐지더라도 정당은 우리 정치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탁월한 자질도 세력화되지 않으면 집권은 힘들다는 진리를 안 전 교수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그의 등장으로 위기를 느낀 우리 정당이 살길을 찾기 위해 제 자리를 잡는다면 한국 정치는 몇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당의 위기는 곧 기회라는 점을 꼭 강조하고 싶다. 정치주체들이 제 자리로 돌아와 이성을 회복할 때 사회과학의 신 르네상스도 활짝 꽃필 것이라 확신한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