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홍은주] 토빈세, 부작용 우려되는 良藥
입력 2013-03-12 17:39 수정 2013-03-12 20:36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라는 책이 있는데 실제로 경제학자의 아이디어가 그의 사후에 더 크게 확산되는 경우가 있다. 2002년에 사망한 노벨경제학 수상자 제임스 토빈(James Tobin)의 경우도 그가 생전에 주장했던 ‘토빈세(Tobin Tax)’가 최근 갑작스럽게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1970년대 브레턴우즈(Bretton Woods) 시스템이 붕괴되고 변동환율제가 도입되자 토빈 교수는 이자율을 좇아 이동하면서 각 나라 금융시장을 교란시키는 단기 핫머니(hot money)에 대해 외환거래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당시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최근 유럽 재정위기 이후 프랑스 등 일부 유럽연합(EU) 국가들이 갑자기 토빈세 도입을 주장하면서 크게 각광 받고 있다.
토빈세는 반대론자들도 부인하지 못할 만큼 너무도 뚜렷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핫머니의 이동에 ‘차바퀴에 모래를 뿌리는 정도’의 제동을 걸 수 있고 외환거래 변동성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일 수 있으며 각국 정부의 재정금융정책 통제권을 강화할 수 있다. 더구나 별다른 조세저항 없이 세금을 걷어 재정위기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매력적인 재정확보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장점이 많은 토빈세가 왜 30년이 넘도록 도입되지 못했을까. 이 의문에 대한 해답에서 바로 토빈세가 가진 치명적인 약점을 발견할 수 있다. 토빈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실행에 따른 정치적·현실적 어려움이다. 우선 토빈세가 성공하려면 금융 선진국들과 국제통화기금(IMF), 월드뱅크 등 국제금융기구 전체의 확고한 동의가 있어야 한다. 돈은 물과 같아서 작은 구멍이라도 뚫려 있으면 새나가기 마련이다. 모든 국가가 동시에 동일세율에 합의하지 않을 경우 토빈세가 없는 나라로 금융거래가 흘러나가 버리기 때문에 먼저 도입한 국가들만 손해를 보게 된다. 현재 EU 차원에서 토빈세 도입이 논의되고 있지만 27개 EU 회원국 전체가 각국의 의회에서 비준을 받아야 하는데 반대하는 나라들이 많으니 도입이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
또 과세대상 금융거래를 정하는 것도 어렵다. 어떤 금융거래에 과세해야 하는지에 대해 표준화된 기준을 만들어야 하는데 천문학적 규모로 이뤄지는 금융거래에서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투기거래와 위험감수 및 유동성 등 긍정적 기능을 하는 거래를 일일이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과세된 토빈세를 나라마다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해서도 각국이 합의해야 하는데 합의에 도달하려면 길고 지난한 정치적 협상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도 최근 한국에서는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지팡이’처럼 토빈세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처음에는 반세계화를 주장하는 일부 야당 인사들만이 토빈세를 강하게 주장했으나 요즘은 정부 여당도 ‘한국형 토빈세’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새정부의 복지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재정수요가 있는데 토빈세는 외환거래 변동성을 줄인다는 명분 아래 조세저항 없이 상당한 재정을 확보할 수 있으니 자꾸만 유혹에 끌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의 동시다발적 합의가 전제되지 않는 토빈세 도입에 한국이 먼저 나서는 것은 ‘예고된 재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학적 수익보다는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한국 국채나 우량채에 투자해 오던 장기 투자자들이 먼저 등을 돌려 가뜩이나 거래량이 적은 국내 외환시장이 더 축소될 우려가 있다. 외환시장 유동성이 줄어들면 적은 자금의 유출입에도 환율이 민감하게 반응해 오히려 변동성이 커질 것이다. EU에서 벌어지고 있는 토빈세 논란에 선제적 관심을 갖는 정도는 필요하겠지만 절대로 앞에 나서서 매를 먼저 맞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토빈세는 양약이지만 치명적인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홍은주(한양사이버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