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의 시편]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입력 2013-03-12 17:43 수정 2013-03-12 21:39
세상 살다보면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하고 싶어도 잘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능력이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다가 제대로 하는 것도 없이 어수선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것이지요. 꼭 해야 할 것을 정하고, 그중에서도 잘할 수 있는 것을 골라서 집중하는 것이 일의 효율도 높이고 보람도 느낄 수 있습니다.
목사에게도 목회사역 과정에서 이런 저런 일들이 많습니다. 산정현교회 담임목사이기 때문에 이곳, 저곳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거나 의지와 상관없이 자리를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이면서 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늘 너무 벌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그래도 어느새 이름을 걸어놓은 곳이 많아지기 때문에 내 능력만큼 거르고 정리하게 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정말 내 위치와 능력, 형편에 잘 맞는 것인지 늘 점검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할 수 있는 그 일들에 대한 또 하나의 고민이 뒤따릅니다. 내가 하고 싶고 또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집중하는 것들이 과연 주님도 기뻐하시는 ‘꼭 해야 할 일인가’라는 것입니다. 하고 싶고,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산다면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고 싶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이 꼭 해야 할 일인지를 점검하곤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하다고들 합니다.
자녀들에게도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하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 더 건강한 것 아닐까요?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 행복한 것은 자기만족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고 싶지 않지만 꼭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자기희생이고 세상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주님조차도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할 일을 하셨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 속에 그것이 담겨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돌아봅니다. 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왔는가, 아니면 해야 할 일을 하며 살았는가를. 그런데 문제는 해야 할 일이라고 믿은 것이 나의 착각이라면, 그러기에 그것이 오히려 해서는 안 될 그런 것이었다면 어쩌겠습니다. 더욱이 하늘 아버지께서는 원하시지 않는 것이라면.
늘 기도하는 것은 꼭 해야 할 일들 놓치지 않고 그것을 잘하기 위한 분별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꼭 해야 할 일이라면 손해를 보고, 불편하고, 희생이 요구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용기와 감당할 수 있는 담대함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후회하곤 하는 나의 불완전함을 늘 안타까워합니다.
<산정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