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오성삼 (19) “남은 삶 참교육에” 21대1 경쟁뚫고 송도高로
입력 2013-03-12 17:19
교육대학원생들의 4주간 교육실습은 국내 학교의 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나 해외 교육실습의 문호를 열어 놓았다. 교직의 국제화뿐만 아니라 날로 늘어나는 다문화 가정의 학생과 학부모를 이해해야 할 예비교사들에게 외국에서의 교육실습을 통해 미래형 교사를 길러내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에 분포한 12개 국가의 학교들과 교육실습협력학교를 체결해 실습생들을 파견했다.
교육대학원장으로 여러 가지를 시도했고 노력의 성과를 얻기도 했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가장 실현하고 싶었던 소외 계층 학생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대한민국 희망학교’를 시작하지 못한 것이다.
자신의 능력과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운명적으로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조기에 꿈을 접어야 한다면 서글픈 일이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위한 특수목적고등학교가 필요하듯 성적이 뒤처지는 학생들이 좌절 대신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교육도 필요하지 않은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기간을 이용해 대한민국 희망학교를 출범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교육대학원장 임기가 끝나 계획이 좌절되고 말았다. 이럴 때마다 나를 위로하는 생각이 있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다. 나는 계획을 세울 뿐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 그분의 영역이 아니겠는가. 하늘의 뜻이 있다면 또 다른 기회에 보다 좋은 일을 맡겨주실 것이다.’
2012년 8월 31일. 65세 대학교수의 정년을 10개월 남겨놓고 있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일간 신문을 넘기던 내게 우연히 인천 송도고등학교 교장 초빙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광고 내용 가운데 관심을 끄는 것은 초빙교장의 지원자격이 65세 이하였고, 취임 날짜는 내가 교수 정년을 마치는 그 다음 날, 9월 1일자 발령이라는 사실이었다. 대부분 학교들이 한두 달 아니면 길어야 3개월 정도를 남겨놓고 교장 공채를 하는데 10개월 뒤에나 발령하는 학교장 공모를 미리부터 하는 경우는 참으로 드문 일이었다. 평소 신문광고를 눈여겨보지 않던 내가 그날 아침 우연히 학교장 초빙광고를 본 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하나가 있었다.
월드비전 후원. 학창시절 월드비전의 도움을 받아 공부할 수 있었던 나였기에 마음의 빚을 덜어낸다는 생각으로 국내외 아동 10여명을 10년 넘게 후원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교수 정년을 앞두고 후원 아동을 점차 줄여나가야 했기에 월드비전 후원팀에 연락을 해놓고 마음이 편치 않았던 시기였다. “혹시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월드비전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도록 하기 위한 뜻이 계신 것은 아닐까.”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두근거림은 어느새 확신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교장 공모의 경쟁률이 무려 21대 1이나 되었다고 한다. 서류심사를 통과한 몇 사람만의 최종 면접이 있던 날이었다. 심사위원들과의 최종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를 떠나기 전 나는 마지막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남겼다.
“만약 교장을 공개 모집하는 이유가 대학 진학률을 높이고, 특히 일류대 진학을 늘리기 위한 목적이라면 지금의 저는 부적격자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약 이 학교의 교장이 된다면 저의 관심사는 이 학교를 입학하는 성적 하위 25%에 해당하는 학생들의 담임역할을 할 계획입니다. 훗날 이들 학생들이 송도고등학교를 입학한 것, 그리고 오 교장을 만나게 된 것이 자신의 인생에 결정적인 변화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내가 최종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은 최종 면접을 마친 때로부터 2개월이나 지난 뒤였다. 그렇게 시작된 송도고등학교에서의 생활이 벌써 한 학기가 지났다. 이제 신학기의 시작과 더불어 이 학교의 발전과 우리나라 교육 현장의 발전을 위해 그동안 경험해 오고 구상해 온 교육프로그램들을 시작하고 있다.
정리=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