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공화국’…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
입력 2013-03-11 19:50
몰래카메라로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감쪽같이 시선을 속이는 초소형 몰래카메라가 넘쳐나는 현상과 무관치 않다. 요새는 USB형, 안경형, 단추형 몰래카메라는 물론, 녹음이 가능한 중국산 몰래카메라까지 공공연히 팔리면서 범죄를 부추기고 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지난 4일 회사 내 수유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수유장면을 몰래 촬영한 혐의로 이 회사 시설관리 직원 A씨(31)를 불구속 입건했다. A씨는 수유실 수리를 핑계로 천장에 약 7㎝의 구멍을 뚫고 화면과 음향이 동시 녹화되는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여성들이 탈의하는 장면 등을 촬영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강북경찰서도 자신이 일하는 식당 여주인 홍모씨 집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샤워하는 장면 등을 촬영한 혐의로 조모(36)씨를 구속했다. 조씨는 2년전 홍씨 딸의 방 벽과 욕실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러나 워낙 초소형이어서 홍씨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다 최근 이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심지어 서울 지하철 3·7·9호선 고속터미널 역 내부 에스컬레이터 앞에는 ‘이곳은 몰래카메라 촬영이 많은 곳’이란 공지까지 붙어 있다. 11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13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위반 건수는 2008년 576건에서 2010년 1134건, 지난해 2401건으로 급증했다.
9일 둘러본 서울 용산전자상가에는 다양한 초소형 몰래카메라가 넘쳐났다. 가장 많이 나가는 제품은 USB형 초소형카메라. 가격은 5만∼20만원대다. 최대 60시간까지 녹화·녹음이 가능하고 600만 화소에 바늘구멍만한 렌즈를 갖춰 겉옷 가슴주머니에 꽂으면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펜형, 단추형, 안경형, 라이터형 등 카메라 유형도 다양했다. 또 초소형에다 녹음까지 가능한 중국산 몰래카메라도 넘쳐났다. 녹음까지 가능한 카메라는 법 때문에 국내에선 제조하지 않는 틈을 노린 것이다.
한 판매점 사장은 “주로 20∼50대 남성들이 카메라를 산다”며 “업무상 필요하다고 둘러대지만 카메라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고 말했다. 다른 업주 A씨는 “범죄 용도로 쓰다 잡히면 참고인 진술까지 해야 되기 때문에 젊은 남성들에게 팔기가 꺼려진다”며 “이 근처에도 수사기관에 불려간 사람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도 ‘미행하기에 적합한 안경형’ ‘어두운 곳에서도 촬영 가능한 차키형’이라는 식으로 범죄를 부추기는 광고가 수두룩하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초소형 카메라 보급이 확대되면서 관련범죄가 급증하고 있다”며 “단순한 범행뿐 아니라 촬영된 화면이 인터넷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유포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