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쓰고 함께쓰고… 지구촌 ‘나눔의 경제’ 뜬다
입력 2013-03-11 19:50
‘빈방은 하룻밤 38달러, 창고는 1년에 300달러, 잔디깎기는 하루 6달러, 픽업트럭은 한 달 55달러, 명품 가방은 한 번 외출에 100달러.’
사지 않고 빌려 쓰거나 나눠 쓰는 나눔의 경제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최신호 커버스토리로 보도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나눔 경제를 대표하는 기업인 에어비앤비의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를 지난달 표지인물로 싣고 “개인 대 개인의 나눔 경제가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대기업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경제전문지 패스트컴퍼니는 “소셜웹의 발달로 전 세계 누구나 무엇이든 나눌 수 있게 됐다”며 “대량소비의 시대가 끝나는 것일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밤 전 세계 4만명의 사람들이 에어비앤비(airbnb.com)로 예약한 민박집에서 잠을 잤다. 빈집을 여행객에게 빌려주는 사이트인 에어비앤비에는 192개국 3만개 도시에 25만개의 아파트, 집, 오두막, 성, 보트, 이글루가 등록돼 있다. 지난해 250만명이 이용했다.
대부분 미국 가정은 공구세트를 갖추고 있지만 평생 사용 시간은 평균 6분이다. 테크숍(techshop.ws)에선 안 쓰는 공구를 빌려주거나 빌릴 수 있다. 영국에는 여분의 돈을 대출하는 조파(zopa.com)란 서비스도 등장했다. 은행원 출신들이 설립한 조파는 최신 금융기법을 활용해 위험을 분산하고 채권추심까지 맡아준다.
나눔의 경제는 과거에도 있었다. 민박이나 카풀이 그 예다. 기술의 발달로 거래 비용이 크게 줄어 가격이 저렴해진 데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달라졌다. 낯선 사람이라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소셜미디어와 페이팔 같은 간편한 지불 수단이 등장한 것도 나눔 경제를 확산시켰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에어비앤비로 집을 빌려주는 이들은 1년에 평균 9300달러를 번다. 릴레이라이드(relayrides.com)에 차를 빌려준 이들은 한 달에 평균 250달러를 번다. 빌려 쓰는 이들도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환경오염을 줄이고 새로운 사람과 사귀는 즐거움까지 더해진다. 이코노미스트는 “나눔 경제의 규모가 260억 달러(약 28조원)에 이른다”고 전했다.
선택의 기준도 바뀐다. 차를 나눠 타는 서비스를 이용할 때는 자동차 브랜드보다는 배기량과 연비를 더 따지게 된다. 무료로 빈방을 빌려주는 카우치서핑(couchsurfing.org) 이용자들에겐 신뢰도가 가장 중요하다. 대량 소비시대에는 브랜드와 광고, 개인의 소유가 경제적 가치를 결정지었다면 나눔 경제에서는 평판(신뢰도)과 참여(네트워크), 경험이 더 소중하다.
돈도 몰려든다. 미국 자동차업체 GM은 릴레이라이드에 1300만 달러를 투자했다. 렌터카 업체 아비스도 차량 나눔 서비스 업체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 나눔 경제 관련 기업은 지금까지 5억 달러가 넘는 투자를 끌어들였다. 나눔 경제가 더 발전하려면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네덜란드 정부는 에어비앤비를 이용해 무허가 숙박업체를 적발하고 있다. 미국에선 택시업계의 로비로 카풀링 서비스를 금지하는 지역이 늘었다. 나눠 쓰는 차량의 보험 가입을 거부하는 업체도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좀 더 가볍고 적절한 방식의 규제와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