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황홀] 하나의 절망의 노래 (A Song of Despair)

입력 2013-03-11 19:08

The memory of you emerges from the night around me.

The river mingles its stubborn lament with the sea.

Deserted like the wharves at dawn.

It is the hour of departure, oh deserted one!

Cold flower heads are raining over my heart.

Oh pit of debris, fierce cave of the shipwrecked.

You swallowed everything, like distance.

Like the sea, like time. In you everything sank!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 1904~1973)

내겐 그대와 함께한 그 밤의 기억이 흐르고

강의 오래된 탄식은 바다로 흐른다.

버려진 새벽의 항구처럼

이제는 떠나가야 할 시간, 아 버림받은 자여

차가운 화관은 내 마음 위로 쏟아진다

그대는 쓰레기의 소굴, 난파된 자의 잔인한 동굴

그대는 머나먼 곳의 일처럼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바다처럼, 시간처럼 모든 것을 점령해버린다.


네루다를 불세출의 시인으로 만든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하나의 절망의 노래(Twenty Love Poems and a Song of Despair)’ 중 마지막 작품인 ‘하나의 절망의 노래’ 앞부분이다. 긴 시를 필요한 만큼 잘라서 소개하는 것은 대개의 경우 무리다. 그러나 네루다의 시는 녹은 초콜릿처럼 자유분방하다. 고형(固形)된 일관성이란 없다. 그러니 어느 부분만 보여주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평자들은 네루다의 시에는 버려진 선창 같은 칠레 남부의 분위기가 있는가 하면 격렬하고 보헤미안적인 산티아고가 있다고 분석한다. 시골, 자연, 태양을 상징하는 마리솔이라는 여인이 있는가 하면 잿빛 베레모의 마리솜브가 있다고 본다.

이 스물한 편의 시는 ‘사랑’이라는 단조로운 한 가지 주제를 다루지만 사랑을 탐사하는 무수한 방식이 들어 있다. 지배와 피지배, 발견과 도피, 우주적 힘과 육체적 힘, 쾌락과 절망, 품에 있으면서도 닿을 수 없는 여인 등. 그런 만큼 네루다의 사랑은 완성되지 못한다. ‘하나의 절망의 노래’를 맨 마지막 작품으로 한 것도 결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닿을 수 없음을 인정하는 탄식이라 할 수 있다.

임순만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