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성낙] 이야기가 없는 삭막한 우리 교육
입력 2013-03-11 19:08 수정 2013-03-11 19:10
“데이터 외우기가 아닌 재미있는 교육은 인문학에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도쿄 주재 독일 TV 특파원이 한 일본 고등학교 학생을 인터뷰하는 방송을 보았다. 서양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그 학생은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서양 음악가들도 아느냐는 물음에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등의 이름이 거침없이 나왔다. 기자는 신기해하며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도 아느냐고 다시 물었다. ‘1789년’이라는 연호가 기계적으로 튀어나왔다. 그러자 기자가 더욱 놀라는 눈치였다. 기자는 학생에게 “그럼 베토벤 작품과 프랑스 혁명은 어떤 관계가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갑자기 학생의 손이 뒤통수로 올라가며 몹시 당혹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학생은 답변할 실마리조차 찾지 못했다. 기자는 ‘이야기’를 들으려 했으나 학생은 기억한 ‘데이터’만 늘어놓은 것이다. 이 일본 학생의 모습에서 우리의 교육 현장을 보는 듯했다.
우리 집 아이가 독일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2학년 때 학교에서 내준 숙제는 이런 거였다. 과목은 ‘마을 배우기(Heimat-Kunde·鄕里學)’인데, 지금 자신이 사는 지역(洞)에 있는 유명한 건물이나 기념비 등을 찾아가보고 느낌을 글로 써서 제출하라는 것, 즉 답사기인 셈이다. 3학년이 되어서는 그 대상 범위가 구(區) 단위로 넓어졌다. 필자가 소년기에 배운 역사에 대한 접근 방식과는 사뭇 달랐다.
또 미술 숙제(Haus-Aufgabe) 때문에 고민하는 중등학교 3학년인 독일 친구의 아들과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숙제는 달력 그림이라도 좋으니 자기 집에 있는 그림 한 점을 보고 그 그림을 정확하게 글로 묘사해 오라는 것이었다. 눈으로 보는 그림을 문장화해 선생님과 학생들 앞에서 낭독해야 하는 것이다. 그림 그리기의 기본인 손재주를 평가하기보다 그림을 보는 눈높이와 문장력을 함께 평가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필자가 학창시절 방학 숙제로 수채화 그림을 그려 제출한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언젠가 미국에 사는 고등학교 2학년짜리 친척 아이의 숙제를 우연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글쓰기인데, 한국전쟁에 대한 숙제였다. 작문한 분량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200자 원고지로 대충 30장은 되는 듯싶었다. 책이나 신문 기사에서 읽은 것을 바탕으로 썼지만, 한국전쟁 이야기이다 보니 자연히 부모와 나눈 이야기가 언급됐다. 그런데 필자의 눈에 선명히 들어오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인용문헌란(Reference)이었다.
자기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인용문헌란에 “○○○, 한국전쟁에 관한 대화 중에서, 2011년”이라고 명기한 점이 특히 돋보였다. 어려서부터 논문의 틀과 함께 논문의 본질인 사실성과 정확성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한편으로는 우리 주변에 심심찮게 일어나는 ‘표절 사건’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다.
어느 날 독일 고등학생과 대화하던중 프랑스 혁명에 대해 넌지시 물어보았다. 학생은 이야기를 술술 풀어나가면서 혁명이 봉건국가 체제에서 민주국가 체제로 넘어가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비롯해 혁명 후 프랑스 문화·예술계에 불어온 근대화 바람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그래서 슬쩍 프랑스 혁명이 몇 년에 일어났는지 물어보니 잠깐 기억을 더듬으며 머뭇거리더니 “1789년”이라며 귀엽게 살짝 웃었다. 이렇듯 ‘1789년’이란 데이터가 아니라 프랑스 혁명을 둘러싼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가 있는 인문학이 우리의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는 본질이다.
‘프랑스 혁명과 베토벤’, ‘마을 역사 이야기 숙제’, ‘글로 보는 미술 숙제’, ‘논문의 기본 틀 배우기’ 같은 초·중·고교 교육 내용에 IT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콘텐츠 육성의 해답이 있다. 그보다는 우선 이야기가 있어서 재미있는 교육 현장을 보았다. 이 이야깃거리의 ‘뭉치’인 인문학, 즉 문사철(文史哲)에 많은 해답이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된다. 국내 자연과학계는 물론 인문학계도 좀 더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교육을 통해 올바르면서도 재미 넘치는 학문의 장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현대미술관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