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서완석] 올림픽운동과 정치개입

입력 2013-03-11 20:22


2010년 11월 12일 개막된 광저우아시안게임 선수단 입장 당시 쿠웨이트 선수단은 자국 국기 대신 올림픽기를 들고 입장했다. 중국의 미녀 피켓걸이 든 팻말에는 ‘쿠웨이트’라는 국명 대신 ‘쿠웨이트 출신 선수들’이라고 적혀 있었다. 쿠웨이트는 그해 1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모든 국제스포츠 행사 참가를 전면 금지하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유는 쿠웨이트 정부가 각국 올림픽위원회의 정치적 독립성을 규정한 IOC헌장을 어기고 자국 올림픽위원장을 비롯해 경기단체장들을 직접 임명했기 때문이다. 징계 여파로 쿠웨이트 선수들은 국가대표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광저우대회에 출전했던 것이다.

WTF 총재 선거 개입말길

올림픽운동에 있어서 정치의 개입은 고대나 근대올림픽에서도 그 유혹을 쉽게 떨칠 수 없었던 것 같다. 폴리스 간의 평화유지와 유사시 군사동맹을 위한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에도 정치적 속셈이 내재돼 있었다. 근대올림픽도 정치에서 단 한번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단번에 받을 수 있는 올림픽무대는 각종 정치선전의 장이 되는데 더할 나위 없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주권국가별 입장, 국기게양과 국가연주를 허용한 데서 보듯 어쩌면 이 같은 정치적 속성이 올림픽 운동의 촉진제가 된지도 모른다. 차이점이라면 고대올림픽에서는 올림픽 기간 중 전쟁을 중단했다면 근대올림픽에서는 전쟁 때문에 세 차례나 올림픽이 중단된 것 정도가 아닐까.

하지만 복잡한 국제정치의 셈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IOC헌장은 정치적 외압으로부터 올림픽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IOC헌장에서 정치와 관련된 조항은 크게 봐 두 곳이 있다. 2011년 7월 8일부터 발효된 개정 IOC헌장 27조 6항에 따르면 ‘국가올림픽위원회는 정치·법·종교·경제적 압력을 비롯한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율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규정을 위반한 것이 쿠웨이트의 경우다. 50조 3항은 올림픽경기장이나 관련된 모든 곳에서 어떤 종류의 시위나 정치적·종교적 또는 인종차별적인 선전을 금지하고 있다. 런던올림픽에서 ‘독도세리머니’를 펼치다 IOC로부터 엄중경고를 받은 박종우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IOC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올림픽의 관계는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쪽으로 지속될 것 같다. 올림픽의 영향력과 위상이 커질수록 그것을 이용하고 싶은 정치권의 욕망도 함께 커지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벌어진 사례는 올림픽운동과 정치의 조심스런 내면을 일깨워준다. 지난달 한국올림픽위원회 수장을 겸하는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정부가 오랜만에 중립적이었다는 점이다. 솔직히 과거 수차례의 체육회장 선거는 집권당이 미는 인사가 당선돼 왔다. 무보수 명예직인 체육회장은 한국의 활발한 올림픽운동사와 더불어 집권당 주요 인사들이 탐내던 자리였다. 이번 선거에서도 집권당 현역 국회의원이 출마해 여권 프리미엄이 예상됐지만 결과는 패배였다. 당선자의 첫 소감은 “중립을 지켜줘서 고맙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끝까지 중립의 주체는 밝히지 않았다.

WTF 총재 선거 개입말길

이 같은 맥락에서 오는 7월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 선거에도 정부가 개입하지 말도록 권하고 싶다. IOC헌장 25조는 국제경기단체(IF)의 지위와 활동이 올림픽헌장과 일치하도록 하며 각 IF는 행정에서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지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여당 입장에서는 WTF 총재 자리가 대선 전리품 정도로 생각되겠지만 무리한 선거개입은 화를 부를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국제적 망신은 물론 향후 태권도의 올림픽 핵심종목 유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드리는 고언이다.

서완석 체육부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