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오성삼 (18) “학생에게 자율성을”… 4色 교복을 자율 선택하게
입력 2013-03-11 19:27
건대부고의 여름교복을 결정하기 위해 학부모 대표들과 담당 부장교사를 비롯한 학교운영위원 남학생과 여학생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성장기 고등학생들의 조이는 불편한 여름 교복을 활동이 간편한 티셔츠 형태로 바꾸기로 했고, 이날 4가지 색상의 티셔츠 교복 샘플이 배달됐다. 티셔츠를 선보이자 반응이 각각이었다.
교사와 학교운영위원들은 단정한 흰 색, 학부모들은 세탁에 신경이 덜 쓰이는 짙은 감색, 여학생대표는 핑크색, 남학생대표는 베이지색이 무난하다고 했다. 모두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를 댔다. “왜 학생들의 교복은 언제나 흰색 아니면 어두운 색이어야 하나요. 교복은 우리가 입는 옷이니 우리의 의견을 존중해주세요. 핑크색 티셔츠를 교복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절대로 안돼요. 어떻게 남학생들이 핑크색 교복을 입겠어요.”
좀처럼 결론이 날 것 같지 않았다. 이쯤에서 내가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러분, 교장인 저에게 결정 권한을 위임해주면 어떨까요?” 눈에서 눈으로 전해지는 그들의 메시지를 의식하며 이야기했다. “금년부터 우리 학교의 여름교복은 여러분이 원하는 4가지 색깔로 정합니다. 각자 취향대로 골라 입도록 하세요. 이의 없죠?” 그래서 4가지 색의 티셔츠로 디자인된 건대부고의 여름교복은 ‘유니폼’이 아니라 ‘멀티폼’이라고 불렸다.
새 여름 교복을 착용하는 첫날 아침, 학교 건물 5층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흰색과 핑크색 노란색에 가까운 베이지색 감색 티셔츠를 착용한 남녀 고등학생 1800여 명이 경쾌한 발걸음으로 교문에 들어서는 모습은 잠시 학교가 코스모스 활짝 핀 들판으로 변한 것 같았다. 조회가 있는 날이면 운동장은 그야말로 꽃밭이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학교 건물의 유리창 틀은 왜 모두 하얀 페인트로 칠해 놓았을까. 교정에 설치된 벤치는 나무도 아니면서 왜 모두 브라운색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학교 유리창 틀 몇 개를 노란색과 하늘색으로 바꾸기 시작했고 교정의 벤치들이 주변 꽃밭의 색상과 조화를 이루게 바꿔갔다. 이런 시도들이 색의 변환만으로도 조직문화와 조직 풍토를 바꿔 가는 데 효과 있었다.
건대부고 교장 임기를 마칠 무렵 다시 재단으로부터 건국대학 교육대학원원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임기를 시작하면서 학교 현장 중심의 교원 양성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고등학교 교장으로 지내는 동안 여러 교사들을 만나 대학의 교원양성 과정에 습득한 지식과 기능이 현장에서 얼마나 유용했는지 자주 질문했었다. 그런데 교사들 대부분이 대학에서 수강한 교과목과 강의 내용이 학교 현장에서 교사직을 수행하는 데 의미 있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따라서 내가 맡은 교육대학원생들의 교육이 실제 학교현장에 유용한 지식과 경험이 될 수 있도록 교수진과 교육과정을 개편하고자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교육대학원장협의회 정기총회에서 내가 회장에 선출되었다. 그로인해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을 대상으로 추진하려던 현장 중심의 교원 양성을 전국 대학원에 권장하는 쪽으로 업무계획이 수정됐다.
무엇보다 대학 강의를 담당할 만큼 능력 있는 초중고 교사들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했다. 초중고등학교 교사들 가운데 박사학위를 지닌 일선 교사들을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겸임교수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겸임교수들은 교과지도법, 학급 경영 교육 실습 등 주로 현장 경험이 필요한 교과목을 맡았다. 기존 교수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학교현장에 취약한 교수들만의 교육대학원 운영보다는 현장경험이 풍부한 우수한 초중고교 교사들에게 일정비율 강의를 맡김으로서 현장중심의 교육대학원 운영을 시도한 것이다.
정리=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