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와줘서 고맙다” 살아 남은 가장의 눈물·위로… 동일본 대지진 2년, 가와무라씨의 애절한 사연

입력 2013-03-10 19:24 수정 2013-03-11 00:19

2만여명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낸 ‘3·11 동일본 대지진’이 2주기를 맞았다. 아사히신문은 10일 가족을 모두 잃은 한 젊은 가장의 사연을 소개했다. 그의 이야기에는 살아남은 자의 깊은 슬픔이 배어 있다. 간절한 그리움을 넘어 잔잔한 위로마저 깃든다.

가와무라 유야(川村祐也·28)씨는 현재 장의사 일을 한다. 그가 시신에 염을 할 때 사용하는 메이크업 박스에는 늘 벚꽃이 들어 있다. 조금만 있었으면 벚꽃을 볼 수 있었을 가족들이 하늘에서도 벚꽃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젊은 장의사의 아내(당시 20세)는 벚꽃을 유달리 좋아했다. 진흙 속에서 찾아낸 아내의 휴대전화 동영상 저장목록에서는 세상을 떠난 첫째 아들이 “아빠~”하고 여전히 말을 걸어온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는 대지진 당시 출장 중이었다. 출장지에서 쓰나미 경보 소식을 듣고 이와테현 해안 마을의 집으로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피하는 중이야”라는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차를 달려 다음 날 아침 간신히 도착한 마을은 자신이 살던 곳의 모습이 아니었다.

집터에서 200m 떨어진 곳에서 가와무라씨는 살던 집의 지붕을 발견했고, 잔해더미를 뒤져 11개월 된 첫째를 품에 안고 있던 아내의 시신을 수습했다. 그의 아내는 이상하게도 편안한 표정이었지만 팔에만 힘이 들어가 있었다.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느낌이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발인할 때 딱 한번 두 사람을 떼어낸 그는 아이를 안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지진 일주일 전 그의 아내는 둘째 아이를 출산했고, 계속 출장 중이었던 그는 둘째의 얼굴을 휴대전화 메시지 사진으로밖에 보지 못했다. 4월에 들어서야 둘째의 시신이 발견됐다. 안치소에서 처음으로 둘째를 만난 그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이제서야 같이 있게 됐네”라며 말을 건넸다.

홀로 남은 가장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마을도 떠났다. 문득 문득 죽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리던 그에게 지진 피해지역 시신 수습을 위한 자원봉사 소식이 전해졌다. 염도 하지 못하고 수의조차 제대로 못 입혀서 보낸 아내와 아이들을 떠올린 그는 일단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이후 수많은 ‘죽음’을 접하는 힘든 나날들 속에서 가와무라씨는 유가족들을 위로하며 또 다른 위로를 체험하게 된다. 그는 죽음과 마주함으로써 앞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초보 장의사는 특히 어린아이의 발인을 할 때면 부모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며 “이 일을 하고 있으면 가족들이 세상을 떠난 이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절실하게 느껴진다”고 전한다.

대지진이 발생하고 계속 가족들에게 용서만 빌었다던 그는 이제 가족들에게 “내게 와줘서 고맙다”고 고백한다. 그는 장의사를 계속하는 또 다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내 오른손은 첫째 아이, 왼손은 둘째 아이다. 고인과 가족을 잇는 내 기술이 나아지는 것은 내 아이들의 성장이라 생각하고 있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