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 한번에 2500만원, 병원 홈피 광고료 명목 ‘뒷돈’… 교묘해지는 리베이트 수법
입력 2013-03-10 18:08 수정 2013-03-10 23:31
단일 최대 규모의 동아제약 리베이트 사건은 제약업체와 병·의원 관계자 1300여명이 재판에 넘겨지거나 보건복지부에 행정처분 대상자로 통보되면서 일단락됐다. 정부는 2010년 쌍벌제를 도입하며 의약품 리베이트 근절 의지를 높였지만 실상은 리베이트 수법이 더욱 은밀하고 교묘하게 변질된 것으로 조사됐다.
10일 정부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전담수사반에 따르면 동아제약 리베이트 사건에는 의사들이 동영상 강의를 만들어주고 돈을 받는 신종 기법이 도입됐다. 영업사원이 의사를 찾아가 “동아제약 직원 교육용으로 동영상을 제작하는데 출연해 주면 소정의 강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섭외한 뒤 직원들이 수강한 것처럼 처리하고 콘텐츠 제작 업체를 통해 돈을 건네는 방식이다.
의사들은 병원 진료실에서 인터뷰에 응하는 방식으로 ‘손쉽게’ 강의를 제작했다. 강의 주제는 ‘복부 초음파 검사의 이해’ ‘의료시장의 개방’ ‘당뇨병의 이해’ 등이었고 의사들은 한 차례 촬영 대가로 많게는 3600만원을 받았다. 의사들은 강의료에 대한 세금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형식상 합법을 가장한 셈이다. 그러나 수사반은 “영상 강의료라는 명분만 취하고 사실상 제약사가 의약품 판매 촉진을 목적으로 의사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 홈페이지에 동아제약이 섭외한 에이전시 광고 배너를 올려 우회적으로 돈을 건네는 기법도 사용됐다. 울산의 K의사는 고객관리 데이터베이스 제작 업체 광고를 병원 홈페이지에 싣는 대가로 두 달간 123만원을 받았다. 충주의 C의사는 동아제약 측이 병원 내에서 환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고 수수료 2500만원을 받았다.
직접 고가의 선물을 받는 ‘고전적’인 방법도 여전했다. 서울 응암동의 K의사는 파일럿 시계로 유명한 1106만원 상당의 스위스 명품 시계를, 안산의 J의사는 LCD TV 14대, 대형 냉장고 1대 등 1990만원 상당의 가전제품을 받았다.
수사반은 2011년 4월 출범 이후 최근까지 이 사건을 포함해 의·약사 및 제약회사 관계자 208명을 기소하고 6100명을 행정처분 대상자로 복지부에 통보했다. 2010년 5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CJ제일제당에서 법인카드와 현금을 받은 전국 병·의원 의사 266명에 대한 경찰 수사도 별도로 진행 중이다.
이처럼 쌍벌제 시행 이후에도 의료계 리베이트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의료계의 ‘갑’으로 군림하고 있는 의사들의 인식 부재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동아제약 리베이트 사건으로 의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대한의사협회는 “위법성이 없는 계약이라는 설명을 듣고 제작했다”며 “동아제약이 이를 리베이트로 인정한 것은 의사에 대한 기만”이라는 내용의 공개 항의서를 내기도 했다. 일부 의사들은 동아제약 불매운동도 벌였다. 의협과 대한의학회는 지난달 4일 뒤늦게 ‘제약 리베이트’ 자정 선언을 했다. 한편 의협은 11일 긴급 임원회의를 열어 대응책을 논의한 뒤 협회 차원의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