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재중] 우리 정치의 선진화는 요원한가
입력 2013-03-10 18:43
새 정부가 출범한 지 2주가 지났지만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40일째 표류하고 있다. 여야는 협상 결렬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가고, 지난해 말 대통령 선거일에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던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는 11일 귀국한다. 2013년 봄 대한민국 정치권의 풍경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안 전 교수가 새 정치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하자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공멸의 위기 속에 경쟁하듯 강도 높은 정치쇄신안을 내놓았다.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며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지금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정부조직법 협상 하나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해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 여야 정치권이 안 전 교수의 재등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술렁이는 모습을 보면서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최근 정부조직법 협상 와중에 애먼 국회선진화법(국회법 개정안)이 논란에 휩싸였다. ‘몸싸움 방지법’으로도 불리는 이 법은 다수당의 날치기와 국회 폭력사태를 막기 위해 여야가 18대 국회 마지막날인 지난해 5월 2일 만들었다. 이 법에 따르면 여야는 상임위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의 요청으로 안건조정위를 구성해 최대 90일간 이견 조정이 필요한 쟁점 사안을 다룰 수 있다. 과거 집권여당이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했던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 전시 등 국가비상사태, 교섭단체 대표 합의로 엄격히 제한했다. 내용만 놓고 보면 그동안 날치기와 격한 몸싸움으로 얼룩진 우리 정치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좋은 법안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이 법안이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소수 야당의 발목잡기에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법안을 만드는 데 앞장섰던 황우여 대표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해 4월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 국회 본회의를 재소집해서라도 국회선진화법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새누리당은 지난해 총선의 전망이 어두워지자 소수야당으로 전락할 경우에 대비해 이 법안을 만들었던 측면도 있다. 새누리당 한 최고위원은 최근 사석에서 “국회선진화법은 지난해 5월에 통과됐지만 내용은 이미 4월 총선 전에 여야 간에 합의가 된 상태였다”며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총선 전망이 어두웠고 소수야당으로 전락할 것에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민주통합당도 국회선진화법을 당리당략으로 악용해서는 안 된다. 최근 국회 윤리특위 민주통합당 소속 의원들이 같은 당 이종걸, 배재정 의원 징계안에 대해 국회선진화법에 따른 안건조정위원회 구성을 주장하면서 ‘제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다수결 원칙을 주장하는 여당 입장에선 국회선진화법이 불편할 수 있다. 옛날 같으면 협상을 해보다가 안 되면 여당 성향의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청하고, 야당이 반발하더라도 강행 처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야당을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법은 만들어졌지만 여야 모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법만 만들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법을 토대로 성숙한 정치문화가 뿌리내리도록 머리를 맞대는 노력이 중요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연방정부 재정 자동 감축(시퀘스터)의 위기 속에서도 인내심을 갖고 상·하원 의원들을 만나 대화하고 설득하는 모습을 우리 정치권에서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재중 정치부 차장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