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현미] 나만 몰랐던…
입력 2013-03-10 18:44
2013년 2월 15일 우랄산맥 인근 러시아 첼랴빈스크 상공에서 불꽃을 달고 떨어지는 운석우(隕石雨) 현상을 뉴스로 접하면서 나는 이런 공상의 나래를 펴고 있었다. 그 운석처럼 하루아침에 다른 외계로 떨어지는 일이 가능하다면 그와 같은 방법으로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도 존재하는 건 아닐까? 만약 그런 외계인의 존재가 있다면 그는 먼저 그가 타고 왔을 미확인비행물체(UFO)의 블랙박스부터 열어보지 않았을까? 도대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일단 사태 파악부터 해야 하니깐.
그러나 그 블랙박스를 열어본다고 해도 대기권에 들어오면서 일어난 충돌과 그 충돌로 인한 불꽃, 폭발음, 추락의 경로 같은 것을 파악할 수는 있겠지만 그가 찾고 싶은 진실을 발견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왜 태어났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인생 전체를 사용하다 죽은 몇몇 지구인의 죽음처럼 블랙박스에는 기록되지 않는 덧없는 아름다움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새 학기에 고3 수험생이 된 아들은 얼마 전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엄마로서는 마뜩잖았다. 대학 입시 공부에만 집중해 좋은 대학에 입학한 후에 다녀도 되지 않느냐, 고3인데 다니던 교회도 잠시 쉬면서 공부만 해도 다른 친구들을 따라잡으려면 시간도 부족하고 실력도 모자라는데 왜 하필 이 시기에 교회에 다니겠다고 하는 것인지.
반대할 명분도 없고 자격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다만 왜 교회에 나갈 마음이 생겼는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별 이유가 없단다. 그냥 기타학원 베이스 선생님이 자신이 생각할 때는 훌륭한 분이신데 교회에 다녀보라고 권유하셨단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이 권유하는 일이고 자신도 그 선생님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 선생님이 권유하신 거니 우선 열심히 다녀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반대하기보다는 기꺼이 찬성하는 태도를 취하는 게 현명한 엄마의 태도일 터. 아들은 그 대신 밤새우면서 할 정도로 좋아하던 게임을 하루아침에 끊고 인강(인터넷 강의)을 들으면서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일요일 아침 교회에 간다고 일찍 일어난 아들과 아침밥을 먹으며 물었다. 그 좋아하는 게임 대신 공부하느라 괴롭지 않느냐고. 별로 괴롭지 않다고. 공부하는 게 재미없던 게 아니라고 다만 공부보다 게임이 훨씬 재미있었을 뿐이라고. 공부도 재미있다고. 엄마는 그것도 몰랐냐고, 1995년 4월 30일 지구에 도착한 아들이 되묻는다.
안현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