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과 채움’ 名作의 공유… 가나아트센터 30주년, 명사들의 애장품展

입력 2013-03-10 17:26 수정 2013-03-11 09:20


“도상봉의 ‘항아리’를 바라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저 빈 항아리 속에 무엇이 있을까? 공허. 아무것도 없다면 무엇으로 채울까? 봄에는 튤립과 라일락을 꽂을까. 언제인가 목돈이 필요해 내놓았다가 서운하고 쓸쓸한 마음에 생각을 바꿨다. 이 항아리가 없다면 그저 삭막할 것 같아서.” 배동만 전 제일기획 고문이 30년가량 소장하고 있는 도상봉의 그림 ‘백자항아리’에 대해 쓴 글이다.

배 전 고문은 고른 숨결같이 고른 붓질로 은은한 기운을 맑고 투명하게 비추는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전시장에 내놓았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4월 14일까지 열리는 ‘나의 벗, 나의 애장품’ 전에는 50여명의 미술 애호가가 소장하고 있는 애장품 70여점이 선보인다. 올해 개관 30주년을 맞은 가나갤러리(대표 이옥경)가 그림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고 대중화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전시다.

김용원 도서출판 삶과 꿈 대표는 단원 김홍도의 ‘선상관매도(船上觀梅圖)’를 출품했다. 배를 타고 가면서 강가에 핀 매화를 감상하는 그림으로 단원의 보기 드문 작품이다. 구정모 대구백화점 회장은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인 이쾌대의 ‘부인도’를 꺼냈다. 구 회장은 “30년 전 누구의 작품인지도 알지 못한 채 구입했는데, 한국적인 조형미와 향토색 짙은 독창성에 빠져 들었다”고 소개했다.

호를 ‘취봉’이라고만 밝힌 미술품 애호가가 소장 중인 박수근의 ‘도화꽃’은 익명을 요구한 두 컬렉터의 또 다른 박수근 작품 ‘아기 업은 소녀’ ‘앉아있는 여인’과 나란히 걸렸다. 안병광 유니온약품 회장은 이중섭의 ‘싸우는 소’를 내놓았고,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은 근원 김용준의 ‘문방부귀도(文房富貴圖)’를, 유홍준 명지대 교수는 20년간 고른 고미술 소장품을 각각 출품했다.

‘할아버지가 꼭 보여주고 싶은 서양명화 101’의 저자인 김필규씨는 김환기의 ‘항아리’를 공개하고, 신성수 고려산업 회장은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최욱경과 양달석의 회화를 선보인다. 이성락 가천대 명예총장은 구루병에 걸려 비운의 삶을 살다간 손상기의 작품을 출품했다. ‘설악산 화가’ 김종학 화백은 오래 전에 수집한 고풍스런 탈곡기를, 의사 홍승의씨는 오윤의 목판화를 내놓았다.

해외 작가의 작품도 전시된다.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은 영국 조각가 헨리 무어의 작품을, 김희근 벽산 엔지니어링 회장은 독일 사진작가 토머스 스트루스의 작품을 출품했다. 또 변기욱 삼화여행사 대표는 일본 작가 야요이 쿠사마의 회화 작품을, 노준의 토탈미술관장은 ‘행복한 눈물’로 유명한 미국 작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판화 작품을 선보인다.

전체 출품작의 보험가액은 350억원. 전시가 성사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올해부터 시행된 미술품 양도소득세 부과로 소장가들이 작품 공개를 꺼려했기 때문이다. 이옥경 가나갤러리 대표가 소장가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한 덕분에 소중한 애장품들을 볼 수 있게 됐다. 유명 소장가들의 취향을 비교하면서 미술품에 대한 안목을 키워볼 수 있는 기회다. 관람료 5000원(02-720-102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