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남혁상] 드레스코드

입력 2013-03-10 17:50

드레스코드(dress code)는 특정장소나 행사에 맞는 옷차림을 뜻한다. 격식을 갖춘 행사에는 비즈니스 정장 차림이어야 하고, 고급 레스토랑에선 야구모자나 반바지 차림은 허용되지 않는 게 그 예다.

학자들은 드레스코드를 문화적 순응에 따른 결과라고 평가한다. 따라서 드레스코드는 사회 또는 문화권마다 달라지게 마련이다. 개인의 옷차림은 또 사회 속에서 자신을 규정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입는 옷에 따라 성별은 물론이고 수입, 직업, 사회적 지위, 종교, 정치적 성향, 심지어 인종까지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대 로마에선 지중해도시 티레의 자주색 염료로 염색한 옷은 원로원 의원들만 입을 수 있었고, 중국에서 황색 옷은 천자(天子)에게만 허용됐다. 19세기 유럽만 해도 격자무늬 옷은 스코틀랜드 남성, 두건은 프랑스 소작농 여성의 전유물이었다. 지금은 예전처럼 엄격하진 않지만 인도의 기혼 여성들은 ‘신두르’라 불리는 붉은 색 가루를 이마 윗부분에 바르고 팔찌를 찬다. 팔레스타인 여성의 경우 드레스의 자수 패턴으로 어느 지역 출신인지 알 수 있다.

드레스코드가 동류의식 표현 수단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면서 옷차림에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도 더해졌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특정기준에서 벗어난 옷차림은 때론 놀림의 대상이 되곤 한다. 남장 차림을 고수했던 19세기 프랑스 여성소설가 조르주 상드는 일부 남성들의 비아냥을 샀고, 10년 전 면바지 차림으로 국회에 첫 등원한 유시민 전 의원은 ‘빽바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엔 대개의 경우 엄격한 드레스코드는 일부 직종에만 한정된 듯하다. 형식보다 실용성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의 트렌드 때문일 게다.

연방정부 재정자동감축(시퀘스터) 문제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미국 정치권에서 때 아닌 드레스코드 논란이 일었다. 의원 몇몇이 휴회 기간 야구 점퍼와 청바지, 모자 차림으로 나타나자 국가 권력서열 3위의 미국 하원의장이 “격식을 갖추라”며 제지한 것이다. 하지만 이 발언은 곧바로 역풍을 불러왔다. 시민들은 백악관과 공화당이 대립하느라 시퀘스터에 따른 정부 폐쇄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한가한 옷 타령이나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회적 갈등·대립을 치유·조정하는 정치력은 근엄한 옷차림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현대 민주주의 모범국가라는 미국의 정치가들도 때론 정략에 매몰돼 간단한 사실조차 간과할 때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남혁상 차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