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발견] (9) 개를 위한 건축?
입력 2013-03-10 17:50
집짓기 열풍이 한창인 와중에 ‘개를 위한 건축’이라는 전시 소식이 들렸다. 일찌감치 마이클 영(Michael Young)과 같은 제품 디자이너들이 개집을 디자인한 적이 있었지만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번 전시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건축가들이 대거 참여한 탓인지 여러 매체에 소개되었고 그들의 명성에 걸맞게 닥스 훈트, 비글 등 족보 있는 견공의 특성에 맞춘 ‘건축물’ 하나하나가 흥미를 자아낸다(architecturefordogs.com).
한때는 서구의 유명 디자이너들은 더 이상 부자의 개를 위해 디자인하는 일은 하지 말자고 자성했다. 하지만 국내 애견 인구가 1000만명이고 동물의 권리까지 주장하는 시대가 되었다. 개집도 진지하게 생각할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진지함이 애완견 거처에만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당에서 비바람 맞는 개집도 있고 소, 닭, 돼지가 사는 곳도 있다. 그래서 개를 위한 건축에서 주목할 점은 개집의 미학이 아닐 것 같다.
좁은 축사를 생각하면 동물에게는 얼마만큼의 공간이 필요한가가 더 중요해 보인다. 이에 비하면 아늑한 주거 공간에서 사는 개에게는 건축가의 도움이 절실하지 않다. 그 개가 자신의 취향을 내세우지도 않았을 테니 ‘개를 위한 건축’은 결국 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한 창작 프로젝트다. 다만, 모처럼 규제와 비용에 구애받지 않고 맘껏 디자인한 것이니 즐겁게 감상할 따름이다.
김상규(서울과학기술대 디자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