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이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가동도 못해보고 ‘유보’
입력 2013-03-08 18:42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당분간 가동키 어렵게 됐다.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대전제인 ‘튼튼한 안보’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남북 간 지속적인 교류·협력과 대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신뢰를 쌓는 단계부터 출발한다. 이어 국제사회까지 참여하는 대규모 경제협력 프로젝트 등으로 남북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발전, 통일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연일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구상은 가동도 못해보고 어긋나버렸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남북이) 서로 약속을 지키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7·4 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 등 남북 간 모든 약속과 합의에 담긴 상호 존중의 정신 위에서 추진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북한은 당장 8일 남북의 모든 불가침 합의를 전면 폐기한다고 선언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첫 조치로 예상됐던 영·유아 등 북한 취약계층 지원도 실행에 옮기기 어렵게 됐다.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분위기에서 인도적 지원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전면적 생사 확인 등의 공약도 이행 시기를 가늠키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단 지속적인 경고에도 핵실험까지 강행한 북한에 강경한 노선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094호와 함께 대화보다는 제재에 무게를 실어 북한을 압박할 것이란 전망이다. 북한이 무력도발을 감행하거나 긴장국면이 장기화될 경우에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자체를 큰 틀에서 재고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이 장기적 관점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조치를 모색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이날 육·해·공군 장교 합동임관식에서 “북한이 변화의 길로 나선다면 남과 북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기반과 조국 통일의 길을 탄탄히 닦아 나갈 것”이라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구현에 대한 변함없는 의지를 강조했다.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구분해 추진하겠다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방침이고, 류 후보자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지원을) 추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물밑에서도 관계 개선을 위한 다각적인 방법을 강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박 대통령이 장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것은 1979년 퍼스트레이디(영부인) 대행으로 임관식에 참석한 지 34년 만이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