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혁신사업 찾아 떠나는 여행] 훌륭한 창업 아이템 가득 싣고 올게요… 美대륙 횡단하는 청춘 4인방

입력 2013-03-08 17:55


지난 4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미국 뉴욕으로 떠나는 비행기 탑승수속을 기다리는 청년들 앞에는 짐이 잔뜩 쌓여 있었다. 20㎏ 쌀 1포대, 라면 1박스, 전기밥솥, 김치, 참치캔…. 수하물을 점검하는 항공사 직원의 눈이 동그래졌다. 청년들은 “여행비용을 최대한 줄여야 했다”며 빙긋 웃었다. 가슴 설레지 않는 삶이 두려웠다는 20대 젊은이 4명은 불쑥 6주간의 미국 여행을 선택했다.

경비는 딱 2000만원, 렌트한 캠핑카를 교대로 운전해 뉴욕부터 샌프란시스코까지 미국을 횡단할 예정이다. 무모해 보이기도 하는 이들의 여행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이미 유명하다. 단순한 휴가나 배낭여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러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장을 다니다 사표를 던지고, 더러는 과감하게 토익(TOEIC) 교재를 덮고 떠나는 길이었다. 한 번뿐인 삶,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에 솔직해지자고 말하는 이들의 모임에는 이름이 있다. ‘삶(SARM)’, 바로 ‘진정한 행동을 시작한다(Start A Real Movement)’는 뜻이라고 했다.

◇젊은 날이 지긋지긋해서야

미국계 증권사인 메릴린치에서 애널리스트로, KDB대우증권에서 IB사업부 직원으로 일했던 백운용(26)씨는 지난해 4월 사표를 던졌다. 기업의 적정 주가를 구하기 위해 늘 재무제표 속에 파묻혀 지냈던 일상이었다. 어느덧 입사 3년차, 주식차트를 분석하고 퇴근할 때마다 과연 세상에 한 뼘이라도 이로움을 줬을까 생각해 봤지만 회의적이었다.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만 크게 들렸다.

‘이것이 꼭 내가 완수해야 할 사명일까’라는 자문에 자답할 수 없었다. 숨차고 반복되는 삶이 과연 행복하냐고, 새로운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느냐고 선배들에게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답답했다. “회사에 다니는 게 즐겁고 행복하면, 네가 회사에 월급을 줘야 할 것 아니냐?”

백씨의 입사동기 최준호(28)씨도 다른 부서에서 비슷한 고민을 키우고 있었다.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증권사에 입사한 것은 큰 도전이었지만 2년이 지나자 설렘과 즐거움이 사라졌다. 특별한 비전 없이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느낌이 불안했다. “늦을수록 가능성은 사라진다.” 최씨는 백씨에 이어 지난해 6월 사표를 썼다.

이들 둘은 “가슴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하며 삶의 주체가 되자”는 목표로 ‘삶’을 만들었다. 이윤을 창출하면서 사회에 이로움도 제공하는 청년 벤처를 창업하자는 꿈을 꿨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김형규(28)씨가 합류해 홈페이지를 제작했다. 취업 전쟁을 보며 과연 이것이 인생인가 회의하던 대학생 김찬울(24)씨도 의기투합해 영상 제작 일을 맡기로 했다.

◇제2의 ‘무하마드 유누스’와 ‘탐스슈즈’를 꿈꾸다

‘삶’의 팀원들은 ‘무하마드 유누스’와 ‘탐스슈즈’ 사례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경제학 교수인 무하마드 유누스는 방글라데시에서 무보증 소액대출(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을 벌여 그라민 은행과 함께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탐스슈즈는 소비자가 신발 한 켤레를 구입할 때마다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어린이들에게 신발 한 켤레를 기부하는 경영정책으로 유명해진 신발 회사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국내외 사회적 기업을 돌아다녔다. 아름다운가게 등을 자체 분석했고, 대기업의 지원을 받아 미국·캐나다의 사회적 기업도 둘러봤다. 탐방의 결론은 ‘시장 논리 속에서 좀 더 강점을 가져야 한다’였다. 소비자가 사회적 기업이 생산한 물건을 살 때 기부하는 마음을 갖거나, 기업이 정부의 보조금을 걱정하고 자선사업을 원하게 된다면 문제라고 생각했다.

‘삶’은 재차 미국으로 떠나기로 했다. 가장 상업적이면서도 혁신적 기업가들이 숨쉬는 땅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번에는 좀 더 긴 시간을 들여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고 있는 청년 기업가 12명을 만날 계획이다. 포브스(Forbes)와 포춘(Fortune) 등에 실린 기사를 읽고 관심이 생긴 기업 60여곳에 연락을 취했다. 만나주겠다고 응답한 회사는 12곳이었다.

◇새로운 삶을 찾아서

‘삶’은 12명의 ‘리얼 무브멘토(Real Movementor)’들로부터 얻은 내용을 스스로 만든 블로그와 포털사이트에 연재할 계획이다. 지구 반대편의 청년 기업가들이 전하는 꿈을 한국의 청년들과 공감하려는 취지다. 4명이 각자의 느낌과 여정을 기록하기 위해 모두 노트북 컴퓨터를 챙겼다. 커피숍에서도 포스팅이나 SNS를 할 수 있도록 멀티탭도 가져간다. 캠핑카도 와이파이 기능이 있는 것으로 대여했다.

안타깝게도 이들 4명에게는 아직 ‘창업 아이템’이 없다. 취지는 훌륭하지만 무엇을 팔아야 할지가 불분명한 점이 가장 큰 약점으로 남아 있다. 백씨는 여행이 끝나면 훌륭한 아이템이 나타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불분명하다고 해서 ‘삶’을 그만둘 수는 없어요. 그때까진 자신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겠습니다.”

탑승 게이트를 통과하던 4명이 문득 뒤돌아섰다. “아직 비행기가 뜨려면 시간이 좀 있는데. 새로운 시작을 원한다면 함께 가시죠!”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