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싱들의 인생 2막] ‘동고동락’ 인터넷 카페에선… “이혼이 숨길 일? 우린 당당히 내일을 준비한다!”
입력 2013-03-08 17:46
“봄바람은 살랑살랑 부는데 일곱 살 난 아이를 두고 일터에 나와 있자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아빠 없이도 잘 키웠다는 말을 듣고 싶은데, 혼자 일과 양육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네요. 회원 여러분 조언 부탁 드려요” 한다솜(가명·35·여)씨는 ‘돌싱(돌아온 싱글)’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 본인의 이혼 사연을 올리고, 일상을 공유한다. 한씨는 “돌싱끼리 대화를 나누다 보면 공감대가 형성되고 서로 조언을 해주며 위안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온라인상에서 삶을 공유하는 돌싱은 한씨뿐만이 아니다. 네이버, 다음 등 주요 포털사이트에는 ‘이혼에서 재혼까지(이재모)’ ‘해피 돌싱’ ‘돌아온 싱글들의 만남’ 등 수십 개의 관련 커뮤니티 공간이 있다. 회원 수는 2만∼4만명에 이른다. 이곳에서 돌싱들은 서로의 마음을 터놓는다. 카페에서는 무료 법률 상담도 해주며, 등산모임, 카메라 출사 모임 등 정기적인 오프라인 모임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커뮤니티 중에는 서울과 경기를 비롯해 전국 팔도로 나누어 지부장을 선출하는 등 체계적인 친목 시스템을 갖춘 곳도 있다. 또 연령대별로 게시판을 나누어 같은 세대끼리 고민을 공유하는 항목도 만들어져 있다. 혼자 자녀를 키우는 홀부모들을 위해 양육법을 공유하기도 한다.
네이버 카페 ‘이혼에서 재혼까지’ 회원인 김상국(가명·40)씨는 “이혼 후 3살 된 딸을 혼자 키우고 있는데, 아이에게 다가가는 방법부터 ‘어떤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지’ 등 유익한 정보를 많이 얻고 있다”고 말했다. 커뮤니티에서는 새로운 짝을 찾기도 한다. 네이버 카페 ‘해피 돌싱’에서 만난 동갑내기(36세) 여성과 남성은 올해 초 커플이 됐다며 커플링과 함께 찍은 사진을 카페 게시판에 올렸고, 회원들은 댓글로 축하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혼에 대해 감추려 했던 것과 달리 공개적인 인터넷 공간에서 본인들의 삶을 당당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돌싱들은 최근 결혼시장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인기가 많은 것은 안정된 경제력과 자상한 성격을 가진 돌싱 남성들로 ‘리본족(Reborn)’이라고 불린다. 리본족이란 이혼 후에 ‘다시 태어났다’는 의미의 신조어다. 최근 돌싱 남성과 결혼한 신나래(가명·32)씨는 “남편이 재혼이라 그런지 매우 신중하고, 이해심과 배려심이 많아 좋다”고 말했다. 돌싱 여성들에 대한 관심도 높다. 지난해 재혼전문결혼정보업체 ‘온리유’의 조사에 따르면 36∼43세 미혼 남성 고객 588명 중 42.7%가 “돌싱도 배우자로 상관없다”고 답했다.
돌싱은 대중매체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최근엔 SBS의 예능프로그램인 ‘짝’의 돌싱 특집이 화제가 됐다. 연예인들도 당당히 본인이 돌싱임을 밝히고, 심지어 유머의 소재로도 쓰인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과거에 비해 이혼에 대해 엄격했던 시선이 많이 누그러졌다”며 “사회적으로 이혼도 개인의 사생활일 뿐 공론화할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온리유의 손동규 명품커플위원장은 “이혼이 늘어나면서 일상 대화에서도 은연중에 이혼 관련 이슈가 화젯거리로 자주 등장한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이혼 남녀 수는 약 120만명이다. 지난해 이혼한 부부는 11만4300쌍으로 하루 평균 313쌍이 이혼한 셈이다. 매시간 평균 13쌍이 이혼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준비 없이 이혼할 경우 나중에 더 힘든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법무법인 ‘정립’의 이태원 변호사는 “실제로 이혼을 하면 맞벌이의 경우 경제력이 반으로 줄어들고, 배우자만 일을 했다면 혈혈단신으로 세상과 직면해야 한다”며 “자유로운 싱글의 삶에 대한 환상을 갖기 전에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지 재정기반을 체크하고,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혼 부부들 중 오랫동안 이혼을 생각해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경우는 문제가 덜하지만 배우자의 외도 때문에 갑자기 이혼을 결정한 경우 대부분 홀로서기 위한 재정기반이 준비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혼한 뒤 자립할 능력이 없을 경우엔 이혼을 재고해 보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