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우리 사모님] 저보고 ‘밥순이’래요… 목사님도 모르는 고민과 상처
입력 2013-03-08 17:26
“저는 밥순이 사모입니다. 따라다니면서 할 일 없이 밥만 얻어먹는다고 남편이 붙여준 별명입니다. 근데 억울합니다. 저라고 어디 하고 싶은 일이 없겠습니까. 뭘 좀 하려 하면 설친다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있으면 게으르다고 합니다. 이래도 욕 먹고 저래도 수군대니 차라리 가만있고 욕을 덜 먹자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조용히 살았더니 무기력감과 우울감이 찾아 왔습니다.”
지난 1월 가정사역 전문기관인 하이패밀리가 개최한 사모세미나 ‘러빙유’에서 45세의 O사모가 한 간증이다. O사모의 말속에 목회현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모들의 아픔이 묻어난다. 지난 2월 크리스천라이프센터에서 열린 사모세미나에서도 교역자인 남편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토로한 사모들이 많았다. 봉사에 아주 열심인 한 사모는 교역자인 남편이 “너무 나선다”고 지적해 큰 상처를 받았다.
더욱이 섭섭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쉽지 않아 고충은 더욱 쌓인다는 것이다.
사모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남편뿐이 아니다. 성도들은 교역자에게 직접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사모들에게 쏟아놓는 경우가 많다.
성도수 50명의 개척교회 P사모는 ‘싹싹병, 괜찮아 병’을 앓고 있다고 고백했다. 얼마 전 교회의 집사가 립스틱을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주일날 바르고 갔더니 그 집사가 “사모 입술이 왜 저래. 사모면 사모다워야지”라고 하더란다. 속으로 화가 끓어올랐으나 ‘괜찮아’라고 마음을 달래며 싹싹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했다. “화가 나도 웃고 슬퍼도 웃고 일그러진 채 웃고 있는 제 모습, 이제 제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사모라는 가면이 저를 짓누릅니다. 이런 제가 너무 싫어요.”
남편과 성도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로 인해 심리적 정서적으로 연약한 사모는 우울증, 분노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남편을 따라 지리산 인근에서 개척목회를 하는 K사모는 우울증이 심각하다. 농사짓는 노인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몇 안 되는 청년들은 신앙이 자랄 만하면 도시 교회로 옮겨버리기 일쑤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장은 제자리걸음이고 기도와 믿음으로 견뎌내다가도 대도시 사모들을 만나면 기가 죽고 절망했다. 자신만 뒤처지는 것 같아 남편에게는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부리고 스스로는 무력감과 우울증에 빠졌다고 말했다.
어디에도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는 사모들은 상처와 아픔을 감춘 채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 가정사역단체 및 교회들은 사모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별도로 운영한다. 목회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지친 사모들을 격려하고 사역과정에서의 어려움이나 아픔, 상처들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하이패밀리 가정사역평생교육원 김향숙 원장은 “사모는 특수한 신분 때문에 속 시원히 털어놓을 통로가 없기 때문에 사모전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크리스천라이프센터 공동대표인 노용찬 목사는 “사모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 자신을 고립시키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남편에게 누가 되면 안 되고 교회도 문제가 되면 안 되니까 스스로를 고립시킨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너무 심리적인 문제에 몰입해 고치려 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그는 “사모문제는 사모 스스로 단체 또는 상담치유,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해 직접적으로 다루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며 “공부하거나 훈련받거나 사모기도모임을 통해 전문적으로 해결해 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