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 지방자치와 재정위기
입력 2013-03-08 17:45
서울 동대문구는 ‘희망의 1대 1 결연사업’을 펼치고 있다. 구청 및 동주민센터 직원들이 취약계층 가구와 결연을 맺고 때때로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며 도움도 주고 있다. 동작구도 ‘직원 1대 1 결연 희망나누미’란 비슷한 사업을 3년째 계속해 오고 있다.
서울 서초구는 혼자 외롭게 살고 있는 어르신들의 생일을 챙겨주고 있다. 가정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건강을 보살피는 방문간호사들이 생일을 맞은 어르신에게 케이크를 전달하고 축하 노래도 불러준다. 경기도 의왕시는 공용청사 앞 광장에 최근 노인전용 목욕탕을 지었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이곳의 입욕료는 일반 목욕탕의 3분의 1 수준이다.
예산이 많이 들지는 않지만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따뜻하게 보듬는 정책들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의 복지 행정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분야의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1991년 기초·광역의원 선거, 95년 자치단체장 선거를 통해 재출범한 지방자치가 몰고 온 변화다. 과거 임명직 때 기관장들은 중앙정부나 상급 행정기관만 쳐다봤지만 이제는 주민을 중심에 두고 행정을 펼치고 있다. 자신을 ‘임명’했고 내칠 수도 있는 유권자들이기 때문이다.
졸속 사업 추진으로 인한 예산낭비, 선심성 공약 남발, 단체장의 비리 연루 등 지방자치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그래도 지방자치가 주민이 주인인 행정을 뿌리내리게 하는 일등공신이라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요즘 지자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지방정부의 물적 기반이 부실해 ‘허울뿐인 지방자치’라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행정·재정권을 틀어쥐고 있어 제대로 된 자치를 실현할 여건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전국 244개 광역·기초단체의 지방재정자립도는 평균 52.3%였다. 민선 자치단체장 시대가 다시 열린 95년에 62.5%였으니 한참 뒷걸음질했다. 지난해 지방세 수입으로 소속 공무원들 인건비조차 감당하지 못한 지자체는 123개였다.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세입과 세출 간 괴리가 큰 수입구조가 지방재정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국세와 지방세 비율은 8대 2이지만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세출 배분은 4대 6이다. 부족한 지방비를 교부세 등으로 국고에서 보전해 주고 있지만 재정 불균형은 심각하다. 영·유아 무상보육, 장애인연금, 기초노령연금, 장기요양보험 등 국고보조사업들이 확대되면서 지방재정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사업을 결정하고 중앙과 광역·기초단체가 예산을 분담하는 국고보조사업은 지난해 985개였다. 게다가 이들 사업에서 차지하는 국비 비중도 2008년 65%에서 지난해 61%로 줄었다. ‘중앙정부가 결정한 사업을 수행하느라 자체 사업은 엄두도 내기 어렵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지자체 총예산 중 지역개발을 위해 자율적으로 추진하는 자체사업 비중은 2009년 42.1%에서 2010년 39.0%, 2011년 37.9%, 2012년 37.5%로 해마다 줄고 있다.
지방자치는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고, 주민참여와 자치를 통해 민주주의를 훈련하고 실현해 가는 제도다. 중앙의 소모적 정쟁에 휘둘리지 않고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보듬고 챙기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이젠 정부가 나서야 한다.
지방재정 건전성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 지방이양 사업의 국가 환원, 복지사업에 대한 국고보조율 상향 조정, 조세 체계 개편, 조세부담률 확대(증세) 등 여러 방안을 열어두고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