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아름다운 중독

입력 2013-03-08 17:46

어쩌면 이 세상에는 ‘중독된 자’와 ‘중독되지 않은 자’라는 두 유형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중독이란 ‘addiction’을 일컫는다. 이 말은 술이나 도박 등에 빠져 그것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어원은 ‘addicene’으로 ‘양도하거나 굴복하는 것’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잡혀서 감금된 노예나 주인에게 넘겨진 사람을 고대 로마법정에서는 ‘중독자’라고 했다. 노예의 경우 어떤 사물에 대한 소유권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소유권을 상실한 사람이다.

여기에 중독의 특징이 숨어 있다. 처음에는 자신이 이루고 싶은 목적을 위해 수단의 하나로 선택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그 수단이 목적 자체가 되어 그것의 노예가 되는 것이 중독이기 때문이다.

‘poisoning’과 ‘addiction’을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 ‘중독(中毒)’이라고 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 같다. 마약이나 도박 등에 중독(addiction)되면 그것이 결국 독약처럼 생체에 기능 장애를 유발하는 중독(poisoning)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독약인 줄 알면서도 사람들이 마약이나 알코올, 도박, 니코틴 등에 중독되는 것은 ‘행복’을 얻기 위해서다. 뇌의 변연계에는 쾌락과 충동을 조절하는 부분인 ‘뇌 보상체계’가 존재한다. 뇌신경세포의 흥분전달 역할을 하는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거기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약이나 도박에 중독되는 메커니즘도 도파민과 연관되어 있는데, 이 보상체계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한번 중독되면 헤어나기 힘들다.

파멸로 치닫는 중독이 아니라 아름다운 중독도 있다. ‘러너스 하이’와 ‘봉사 활동’이 바로 그것. 러너스 하이란 달리기를 시작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마치 마약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상태와 비슷한 행복감에 빠져드는 현상을 말한다.

봉사 활동에 중독되는 사람들도 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를 방문해 봉사 활동을 하고 돌아온 배우 김현주는 “나눔과 봉사가 어떤 것보다 중독성이 강한 것 같다”고 했다. 또 지난 4일 국세청이 선정하는 ‘아름다운 납세자 상’을 수상한 김재하 대영베어링 회장은 “기쁨에 중독되어 봉사를 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본능적인 욕구의 충족’과 ‘이성적으로 바람직한 것’이라는 두 가지 바람을 모두 충족시켜야만 진정한 행복이라고 역설했다. 아름다운 중독이야말로 거기에 정말 부합되는 조건이 아닐까.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