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 칼럼] 그리스도를 본받아

입력 2013-03-08 17:41


그리스도인들이 지향해야 할 지상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닮고 실천하는 것이라 믿는다.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는 사순절기간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드리기 위한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선교동역자로 몸담았던 독일교회는 사순절기간을 ‘7주간 없이(7 woche ohne)’ 캠페인을 벌이며 그리스도인들이 익숙했던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직의 길을 훈련하는 기회로 삼는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세속화의 가치를 털어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체코의 출신 아메데오 몰나는 종교개혁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교회사가이다. 그는 종교개혁의 기원을 16세기가 아니라 12세기와 15세기에서 찾고 이 시기에 있었던 교회개혁운동을 첫 번째 종교개혁운동이라 불렀으며 16세기의 종교개혁운동은 제2의 종교개혁운동이라고 불렀다. 대표적인 첫 번째 종교개혁운동은 12세기 불란서 리옹에서 시작하여 이탈리아 전 지역으로 퍼져갔던 발데시우스의 교회개혁운동과 15세기 체코의 프라하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얀 후스의 개혁운동이었다. 첫 번째 종교개혁의 초점이 하나님 나라의 실현에 맞추어졌다면 두 번째 종교개혁의 초점은 믿음으로 이뤄지는 의를 통한 개인구원에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교회개혁의 방향은 두 개혁운동의 장점과 약점을 보안하여 제3의 개혁 모델을 영적투쟁과 실천을 통해 만들어내는 것이라 하겠다.

첫 번째 종교개혁운동이 발현된 12세기의 시대상황은 교회의 세속화라는 말로 집약될 수 있다. 지하에서 핍박받던 교회가 콘스탄틴 황제의 기독교 공인으로 지배자의 종교로 자리 잡으면서 교회는 커다란 영적위기를 맞게 되었다. 또 물질적인 풍요가 교회의 세속화를 가중시켰고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교회와 교회권력의 세속화는 교회개혁 요구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시대정신의 흐름 속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그리스도가 걸었던 가난과 십자가의 길을 따르고자 방랑수도자의 길에 몸을 던졌다. 발데시우스는 부자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특권의 삶이 보장되었으나 친구였던 젊은 사제의 ‘부자청년’에 대한 설교를 듣고 특권을 버리고 방랑수도자의 길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는 상속된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당시 사제들만 읽던 성경을 번역해 가난한 사람들이 성경을 직접 읽고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들의 교회개혁운동은 로마교황청과의 마찰을 가져왔고 1848년 관용칙령이 내려질 때까지 수많은 순교의 역사로 점철되었다.

아씨시의 프란시스는 발데시우스보다 30년 뒤진 시기에 활동했던 12세기 교회개혁운동의 영향 하에서 활동했던 수도자였다.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그를 현존했던 인물 중 가장 그리스도를 닮은 참그리스도인이었다고 평가했다. 프란시스는 부자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나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청빈의 삶을 선택했다. 프란시스는 죽기 전에 두 가지 소원을 이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첫째는 그의 생전에 그의 몸과 영혼이 주께서 친히 겪으신 수난의 고통을 맛보게 해 달라는 것이었으며, 둘째는 주께서 죄인인 인간들을 위해서 그처럼 참으실 수 있었던 끝없는 사랑을 알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어느 날 아씨시의 베르나 산정에서 기도하던 그는 꽃같이 빛나는 6개의 날개를 가진 천사의 임재를 지켜볼 수 있었다. 날개 속에 숨겨진 작은 몸을 가진 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것을 뚜렷하게 보았다. 천사가 떠난 후 프란시스의 두 손과 두 발에도 못 자국이 생겼고, 오른쪽 가슴에는 창으로 찔린 자국이 나타나고 피를 흘려 속옷과 겉옷을 적셨다. 그는 이 흔적을 숨겼으나 나중에 제자들이 그의 속옷을 빨 때 이 성자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몸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받으신 5가지 상흔을 받음으로 온전히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이 되었다.

2013년 사순절을 맞아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세속화의 감옥에서부터 벗어나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따라감으로 구원과 생명의 능력을 회복하는 ‘십자가 순례의 길’에 나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목포 예원교회 목사·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상임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