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교회가 있었네-상진교회] 좋은 씨앗이라야 곡식 얻듯, 기도 잘해야 영성이 실하다지
입력 2013-03-08 17:28
전북 정읍시 산외면 상진교회
상진교회는 전북 정읍시 산외면 상두리에 있다. 산외면(山外面)은 노령산맥의 바깥쪽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모악산 줄기와 이어진 570여m 높이의 상두산 아래쪽을 상두리라고 부른다. 상두리에는 작은 촌락이 드문드문 터를 잡고 있다.
가을엔 단풍구경을 하려는 관광객이 이 지역을 찾아오긴 하지만 내장산으로 몰리는 인파에 비하면 한가한 수준이다.
교회에서 3.4㎞쯤 떨어진 산외면사무소 인근의 ‘한우마을’에는 질 좋고 값싼 한우를 맛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진다.
성경말씀 몰라도 간절한 기도
교회의 주 전도지역은 동진·서진 마을이다. 동진강과 이어지는 시내를 기준으로 동서쪽의 촌락을 각각 동진, 서진마을이라고 한다. 교회는 동진마을 쪽에 있다. 주민 50여명은 주로 벼 고추 콩 배추 등을 재배한다. “자식들 나눠줄 만큼 농사를 짓는다”는 60세 이상의 소농이 대부분이다.
교회에 나오는 어르신 14명은 “자녀들 잘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기 위해 새벽예배에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박승원(46) 목사는 “작은 시골교회지만 기도의 열기는 그 어느 교회보다 뜨거울 것”이라고 말했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는 성경말씀밖에 기억하지 못한다는 장현선(69·여) 권사의 기도는 간절했다. “손주들이 꼭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게 해주시고 믿지 않는 작은아들은 담배 끊게 해주시고 구원받게 해 달라”는 것. 장 권사는 “큰아들은 유명한 공기업에 다니고 작은아들도 서울 큰 회사에 다닌다”면서 자녀들 자랑을 이어갔다.
사가마을에 사는 장 권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26년 전 49세로 세상을 떠난 남편의 유언 때문이다. 그의 남편은 당뇨병을 앓은 뒤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젊었을 때 성경공부 하듯 공부했으면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에 갔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다.
그는 20년간 병마와 싸우며 하나님께 의지했지만 한 대학병원에서 “좋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진단을 받은 뒤 기도원에 들어가 18일간 기도하다 천국으로 떠났다. 남편의 유언은 “장례는 교회 식으로 치르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 장 권사는 “난 일을 해야 해서 남편만 교회를 다녔었는데 죽기 직전까지 그렇게 교회에 다니라고 했으니까 열심히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거 아니겄소잉”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막내 성도인 김복순(65·여) 권사는 한동안 “하나님 아버지, 제발 살 좀 찌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위장이 안 좋아서 몸무게가 40㎏밖에 안 나갔는데 병원에선 이상이 없다고 해서 교회에 나와부렀어. 우리 아저씨가 일도 안 허고 맥없이 놀러만 다니니께 화가 나서 그랬는지 몰라…. 지금은 하나님 은혜로 괜찮아져서 50㎏은 넘은께….”
김 권사는 “2남 2녀를 뒀는데 새끼들 모두 건강하고 직장생활 잘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했다. 김 권사 자신이 기도로 병을 고쳤다고 믿는 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자녀들에게도 내려지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최고령 성도인 이복례(97) 할머니는 이런 저런 질문에 한동안 손사래만 치면서 “아무것도 모르겄소”라고 했다. 곁에 있던 성도들은 “할머니가 부끄럼을 타서 그러신다”고 했다. 두 시간쯤 지나서야 할머니의 말문이 열렸다. “한 권사님이 새벽기도하고 돌아가셔서 그날 바로 돌아가신 걸 보고 교회에 나왔소잉. 아이고 후딱 죽으려고 교회에 열심히 나오는데 하나님이 안 데려가니까 죽겄소. 오늘 잡아갈란가 내일 잡아갈란가, 그러는데 하나님이 안 데려가. 고생 안 하고 후딱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당께요.”
이어 “손주 9명을 키우느라 힘들었는데 죄다 너무 잘 컸다” “참깨 농사를 짓는데 자식들 나눠주고 싶어서 하는 거다” 등 이 할머니의 말씀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박 목사는 “처음에 낯을 가리시느라 말씀을 잘 안 하시는데 한번 시작하시면 한두 시간 말씀을 그치지 않으신다”며 “말동무가 없어서 그러신지 외로움을 많이 타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무속신앙 버리려고 예배당으로
상두리를 감싸고 있는 상두산은 ‘영험한 기운’을 안고 있어 무속신앙의 본거지로 불린다는 모악산 끝자락과 이어진다. 상두리는 마을 어귀의 나무에 색색의 헝겊을 매달아 놓고 만수무강을 비는 등 토속신앙의 뿌리가 깊은 곳이다. 이 때문인지 지난달 28일 “무속인이 될 뻔했다”는 주민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진마을에 사는 김영자(78·여) 권사다. “신기가 들어서 몸이 쑤시고 아픈 게 내림굿까지 받았는데 그것(무속인)이 뭐시 좋겄소. 그런께 하나님이 무당을 못허게 한 것이지,”
김 권사는 10년쯤을 버티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내림굿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점을 보며 살기는 싫었다”고 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마을 인근의 상진교회였다. 그는 35년 전 처음 예배드린 날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음력으로 정월 수요일 밤에 혼자 막 교회에 왔어. 그런 다음엔 제사도 안 지냈는데 시어머니한테 죽으라고 혼났어. 시어머니가 목사님한테까지 찾아가셔서 뭐라고 하기까지 했응께….”
김 권사는 이후 폭설로 교회 차량을 운행하기 어려울 때면 비교적 미끄럼을 덜 타는 짚신을 신고서라도 교회에 나올 정도로 독실한 크리스천이 됐다. 그는 “교회에 처음 나오고 그 다음주부터 새벽기도를 만날 나왔는데 사방이 다 아팠다가 열심히 교회 댕겨서 다 괜찮아졌다”고 했다.
권유순(77·여) 집사도 “무당이 되기 싫어서 교회에 나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동생이 세상을 떠난 뒤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고 그 영향 때문인지 주변 어르신들로부터 “신이 붙었다. 굿 하면 점쟁이가 된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됐다. 혼자 괴로워하던 권 집사는 교회에 나가려고 했지만 “교회에 다니면 중학생 하나 가르치는 돈이 들어간다”는 남편의 반대에 부딪혔다.
남편은 결국 아내가 무당이 되는 것만은 막아야 했기에 아내의 고집을 꺾지 않았지만 여전히 큰 돈(?)을 헌금하는 데 반대한다. 권 집사는 “남편이 교회에 2000원만 내라는데 어디 그렇게 되겄소잉. 장 보는 돈 아꼈다가 조금 얹어서 헌금하는데 남편이 알면 큰일난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곁에 있던 한 어르신이 “바깥양반이 그걸 여태 모르고 있는 걸 보니 솔찬히 멍청한 양반이구만”이라고 말하자 웃음보가 터졌다.
무속신앙이 깊숙이 자리를 잡은 곳이라지만 주민들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미션을 포기하지 않았다. 1949년 김도술 송영옥 한금순 성도 등은 가정예배를 드리다가 교회를 세우기로 뜻을 모았다. 조요셉 선교사의 헌금 1만5000원으로 초가집을 매입했고 이를 수리해 53년 3월 입당 예배를 드렸다. 예배당은 69년 106㎡(32평)로 증축됐다. 이후 정종성 정대성 장로 형제가 땅을 기증해 현재의 자리에 새 예배당이 지어졌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측 상진교회는 90년대 초 성도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주민 수 자체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800여명이던 주민은 현재 50여명으로 감소했다. 박순례(85·여) 권사는 “초창기 교회는 꽉 찰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는데 어느새 청년들이 다 빠져나가고 초등학교도 문을 닫은 뒤 교인 수도 확 빠졌다”고 전했다.
교회 재정도 팍팍해져 몇몇 교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그 명맥만 유지되는 실정이다. 교회 건축에 큰 힘을 보탠 정 장로 형제는 이 마을을 떠나 부산으로 이사한 뒤에도 정기적으로 교회 재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 박 목사는 “정 장로님 형제를 비롯해 이 마을 출신 성도 네 분이 도시로 가신 뒤에도 신경을 써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2011년 12월 부임했다. 40년간 이 교회에서 시무한 박영원 목사가 은퇴한 뒤다.
박승원 목사는 고령의 어르신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지 고민하다 ‘맞춤형 설교’를 시작했다. 예컨대 하나님의 축복을 설명하면서 “하나님께서 햇빛과 비를 조화롭게 내려주시니까 식물이 잘 자라서 맛좋은 쌀과 배추를 수확하고 자식들에게도 나눠줄 수 있다”는 식이다. 또 봄에 정성스레 씨를 뿌려야 잘 익은 곡식을 얻는 것과 같이 기도를 열심히 해야 깊은 영성으로 무장할 수 있다고 설교한다. 박 목사는 “성경말씀을 쉽게 설명하는 게 가장 어렵다”며 “원문에 충실하게 설교를 하면 받아들이시지 못하는 것 같아서 되도록 시골 어르신의 눈높이에 맞춰 복음을 전한다”고 했다.
박 목사가 교회 옆마당에 조그만 텃밭을 일구는 이유도 주민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다. 상추 고추 등을 길러 이웃에게 나눠주고 농사 노하우를 묻기도 하면서 자연스레 대화하는 기회를 넓힐 수 있다. 박 목사는 “처음에 서먹해하셨던 분들이 이제는 농사지은 채소를 광주리에 가득 담아서 찾아오시기도 한다”고 말했다.
5남 1녀 중 넷째인 박 목사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 박영완 목사는 전북 남원과 임실 등지의 시골교회에서 27년간 시무하다 1994년 57세로 소천했다. 5형제 가운데 박승원 목사를 포함해 형제 4명이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들어 복음을 전하고 있다. 큰형 박요한 목사(충현교회)와 둘째 박찬양 목사(존귀한교회)는 경기도 시흥시에서 시무한다. 셋째 박승호 선교사는 몽골에서 사역하고 있다.
박승원 목사는 99년 2월 총신대신대원을 졸업했고 2000년 김제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서울과 전주 등지에서 목회하다 상진교회에 부임했다. 박 목사는 “어르신 한 분이라도 더 돌아가시기 전에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를 드리고 구원받으실 수 있도록 더욱 힘을 쏟겠다”고 했다.
▶상진교회 가는 길
서울에서 자동차로 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천안JC까지 가서 천안논산간고속도로 논산 방면으로 갈아탄다. 논산JC에서 호남고속도로를 따라가다 전주IC 군산·전주 방면으로 나간 후 반월교차로에서 군산·익산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조촌교차로에서 군산 방면으로 우회전 해 대흥교차로에서 남원·순창·정읍 방면으로 16.2㎞를 이동한다. 구이교차로에서 순창·평화동·모악산 방면으로 가다가 원당교차로에서 우회전한다. 27번 국도를 타고 13.3㎞ 직진, 상용교차로에서 49번 국도 내장산국립공원 방면으로 5㎞를 이동해 사가교차로를 지난 뒤 우회전한다. 상두1길을 따라 800여m를 가면 오른쪽에 교회가 보인다.
정읍=김경택 기자 ptyx@kmib.co.kr